한밤의 도서관

참는 게 죽기보다 싫을 때 읽는 책

uragawa 2019. 8. 28. 18:42

자신이 안고 있는 괴로움과 번거로움을 구체적으로 특정해 해소하려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자기 스스로 느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즉, 자신을 느끼고, 자신이 느끼는 마음을 기준으로 행동할 때야말로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자신을 소중히 한다 = 자신의 마음을 느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정말 행복하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 정말 행복하다’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결국, 어떤 선택ㅇ르 하든지 자기마음을 기준으로 하면 ‘내 생각대로 이루어져서 행복하다’라고 만족하며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게 됩니다.



남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과 남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다른 것 같지만, 사실 같은 마음입니다.
애당초 자신이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라는 호의와 선의를 갖고 행동할 때는 해주는 행위 자체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자신이 ‘해주는 입장’이니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다고 의식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야’하고 생각할 뿐이지요.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므로 그 행위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상대에게 보답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고 싶은’ 욕구에 따라 행동하기에 거기에서 만족과 보람을 느끼는 것이지요.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사고하면 ‘남들은 평소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할까?’ 혹은 ‘저 사람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거로 보아 아마도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라고 항상 남의 언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민감하게 반응하느라 자신의 속을 스스로 썩입니다.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바람은 ‘인류 화합과 세계 평화’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이상적인 일입니다. 자신에게 그런 막중한 부담을 지울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한쪽이 자기 마음을 속이는 상태에서 신뢰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까요?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것과 마지못해 자기 생각을 굽히고 타협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타협한다는 생각 속에는 신뢰감이 없습니다. 서로 신뢰하는 관계에서는 자신을 인정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수입니다.



상담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려는 사람
만약 주변에 이렇게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정말 지겨워!’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이 박정해서도 아니고, 죄책감을 느낄 일도 아니에요. 이는 상담이라는 방법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려는 상대방의 목적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아마도 그 사람은 당신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상담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상담자로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단지 그 사람은 상담이라는 형태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기에 그럴 뿐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상담하려는 것이 아니니, 오히려 상담하는 문제가 해결되면 곤란하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더는 관계를 맺기가 어려우니까요.



· 미안해. 이제 더는 내가 힘이 되어주지 못할 것 같아.

· 정말 들어주고 싶은데, 듣고 있으면 나도 괴로워져…….

· 미안하지만,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도 될까?
이때 자신의 기분을 있는 그대로 상대방에게 말하는 점이 핵심입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기분을 최소한도라도 상대에게 전해, 자기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에 더는 끌려다니지 않게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상대의 말을 마음속으로 부정하고 싶어진다면, 지금 자신이 듣기 싫은 것을 참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까지 이야기했듯 참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자기 마음을 다쳐가면서까지 남을 위해 참으면, 대체 무슨 이득이 있을까요?



자신을 우선하면, 몸과 마음이 일치해 편안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기분이 좋다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고 있다는 의미랍니다.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는 말 그대로 대답하지 않을 자유가 당신에게는 있습니다. 그런 자유를 자신에게 허락해보세요. 망설이거나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지 않고 충분히 침묵할 수 있답니다.



자신에게는 자신의 주장이 있고, 상대에게는 상대의 주장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말이 자신의 정론인 셈이지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만의 정론일 뿐입니다. 상대가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지만’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사용하는 사람은 고작 한 시간 동안에도 10번, 20번은 거뜬히 사용합니다. 이처럼 하루에 100번 정도 사용한다 했을 때 1년이면 3만 6,500번을 사용하게 되고 10년이면 36만 5,000번, 20년이면 73만 번이나 사용하게 됩니다.
이렇게나 자주 ‘하지만’을 사용하면 인간관계가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인생마저 소극적으로 살게 되어 분명 어둡고 황폐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기길 원한다면 싸움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상상하면, 그것만으로도 또 두려워지지요.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하기 위해 굳이 남과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를 이기거나 제압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소중히 하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상대와 싸워 이기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소중히 하겠다고 결정하면, 적어도 싸워야 한다는 두려움 정도는 해소할 수 있습니다. 훅여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내 의지대로 행동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립의 뜻을 ‘무슨 일이든 혼자서 버티는 강인함’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이런 사람은 직장에서 상사에게 업무를 지시받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부담스럽게 느껴져도 자기 스스로 잔업을 자처하며 고군분투하지요.



책임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고, 책임질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남의 허락이 있어야만 행동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실패해도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