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이 어떤 앎의 세계에 진입하려고 할 때 그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사회 전체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랄까. 또한 부유하든 가난하든 잘났든 못났든 늙었든 젊었든 장애가 있든 없든 간에 그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어렵지만 흥미진진한 실험이랄까. 도서관의 세계에는 그런 멋진 꿈이 있었다.
무수한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한국 사회는 과연 무언가를 배우려는 누군가에게 손 내밀고 끌어 주며 마음을 북돋워 주는 곳일까? 국민의 세금으로 그 ‘공짜’ 기회를 누리게 할 만큼 우리는 누군가의 배움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그 뒷감당을 하고 싶어 할까? 제 공부는 제 돈으로 하라는 치열한 경쟁의 논리가 우리 가운데 더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밖에 내가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도서관 대출카드 디자인이다. 지금은 도서관 애플리케이션이 대출카드와 혼용되고 있기 때문에 사용 빈도가 다소 줄긴 했지만, 그럼에도 도서관 대출카드는 내 지갑 속에 항상 들어 있는 중요한 카드 중 하나다. 무미건조한 신분증 처럼 보여 화려한 디자인의 신용카드에 밀려 조용히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해외 도서관에 갈 때마다 대출카드를 만드는 나로서는 이게 항상 아쉽다. 한국의 도서관들에 하나의 팁을 드리자면, 북미의 경우 도서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대출카드 디자인 공모를 한 후 이를 선별해서 쓰기도 한다. 여러 종류의 디자인이 있어서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시도는 한국의 도서관에서도 한번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도서관은 참 신기한 곳이다. 도서관으로선 자료 미반납자에 대한 대책을 나름 고심하겠지만, 그럼에도 그곳은 책을 빌려주더라도 돌려받을 수 있으리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공간이다. 또한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공유하려는 태도 역시 기저에 깔려있다. 즉 도서관은 사회 구성원에 대한 믿음 그리고 책이 이들을 성장시키리라는 기대를 동시에 품고 있는 곳이다.
도서관이란 단지 건물과 장서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관리 속에서 사람들의 삶 속에 자리 잡고 성장해 간다.
종종 친구들에게 도서관에 책이 없어 답답하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그것도 몰랐느냐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국립중앙도서관의 ‘책바다’ 서비스를 소개해 준다. 전국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찾아 대출해 주는 서비스인데, 특히 절판본을 구해 읽고 싶을 때 유용하다. 아쉽게도 공짜는 아니다. 지역에 따라 비율의 차이가 있는데, 지자체와 이용자가 택배비를 나누어 부담한다. 어떤 경우는 협정을 맺은 도서관끼리 무료로 책을 대출해준다.
언젠가부터 여행 중에 다 읽은 책을 그 도시의 도서관에 기증하고 있다. 무거운 짐이 되는 책을 덜어 낼 수 있고, 책을 기증하면서 사서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신개념 도서관의 개관은 자연스레 사서의 존재에 대한 이슈로 번져 나갔다. 책 없는 도서관에서 사서는 과연 필요한 존재일까? 대개의 경우 책은 누가 읽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 혼자 스스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소극적으로 보자면 책 없는 도서관에서도 이용자가 쓰는 컴퓨터와 건물을 유지·관리해 주는 이로서 사서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사서는 과연 그런 식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걸까?
내가 대학의 다니던 시절, 도서관은 아직 폐가식이었다. 학생들은 도서 목록 카드를 뒤적여서 책의 청구기호를 찾아낸 뒤 종이에 적은 다음 창구 앞에 줄을 섰다. 창구 너머에서 사서 선생님과 아르바이트 학생들은 그 종이를 받아 폐가식 서가에서 책을 찾은 뒤 대출자의 이름을 호명해 신청 도서를 건네 주셨다. 지금으로선 아마 상상하기 힘든 풍경일 것이다.
까탈스러운 깔끔쟁이 내 친구는 희망도서를 신청한 후 그 책의 첫 대출자가 되는 방식으로만 도서관을 이용한다. 그렇게 빌린 새 책은 많은 서점에서 독자를 기다리며 대기 중인 책과 똑같은 새 물건이니 책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반납의 유무만 차이 날 뿐 마치 새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을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