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카코타로 14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잔인무도한 살인귀라면 얼마나 편할까요? 아마 사람을 아무리 죽여도 마음 아플 일 없이, 그야말로 자가용 범퍼가 조금 찌그러진 것보다도 못한 일처럼 차례로 죄를 저지르겠지요. 사람 가리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죽여 연쇄살인범, 살인귀, 이상범죄자라고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경멸당하겠지만, 그는 태연하겠지요. 어쩌면 그런 사람일수록 붙잡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동기도 분명치 않고, 피해자하고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경찰이 그런 사람을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을까요? “확실히 타인의 관대한 마음을 갈가리 짓이겨 국수 양념으로 쓰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요.”“그게 무슨 소립니까?”“세상에는 타인의 생활을 망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인간이 꽤 많다는 소립니다.”-누명이야기 中 그녀의 여동생 이야기의 뒷부분은 이러했다..

한밤의 도서관 2015.11.30

캡틴 선더볼트

이번에도 또 나는 중요한 대목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판단 미스만 연발하는 쓰레기 인생. 언제나 이 모양이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나는 매번 실수만 한다. 어디까지고 자신에게 욕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이 터졌을 때,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선택을 해야만 돼. 대책을 세우든, 아무것도 안 하고 어떻게 되나 지켜보든.” 복사기는 다기능 PC와 같다. 스캔도 가능하고,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메일도 보낼 수 있다. 상태를 감시하다가 고장이 났거나 토너가 다 떨어질 때쯤이면 자동으로 담당자에게 메일을 전송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복사기’라는 이름 때문인지 복사기는 똑같이 찍어 내는 기계이지 그 외의 기능은 덤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살림이 내리막으로 돌아선 것은 진작부터였고, 이제..

한밤의 도서관 2015.09.08

밤의 나라 쿠파

“나 이제 정신 차렸어. 내가 정말 미쳤나 봐. 여보, 우리 다시 시작해.” 아내는 바람을 피운 사실을 반성하고 말했다. 그녀는 몇 년 전부터 친구들과 강습을 나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낮에 곧잘 나가 젊은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꽤 오래 사귄 것 같은데 남자에게 돈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진실한 연애라기보다 서로 노는 관계였던 건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발각되었을 때, 나는 오래도록 속아 온 사실에 놀라서 내가 봤던 가정의 모습은 환상이었나, 하고 망연자실해졌다. 내가 기업 주가에 일희일비하는 사이에 우리 집 주식은 폭락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란 위기에 처하면 주위의 누군가와 의논을 하고 싶어 하는 생물이니까. ‘의논을 하는 편이 좋을까?’ 하는 것조차 의논하고 싶어지는 거 같아.” 최근..

한밤의 도서관 2014.12.11

가솔린 생활

“호소미 씨가 전에 교사들한테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인간에게는 다른 이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도움이 되고자 하는 욕구, 칭찬받고 싶어 하는 욕구, 이렇게 세 가지 욕구가 있대. 그러니 돈이 있으면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도 맞는 말은 아니야. 인간은 누구든 도움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아. 그리고 아무리 단순한 작업이라도 괜찮으니 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발상도 사실이 아냐. 그것만으로 인간은 행복해지지 않으니까. 정신은 점점 메말라 갈 뿐이지”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고들 하는데……” 자파는 내 이야기를 들은 후, 흐흐 웃으며 말했다. “원래 인간이란 모름지기 그런 속성이 있잖아. ‘자기가 제일 중요하고’ ‘늘 자기 사정이..

한밤의 도서관 2014.04.24

마리아비틀

“밀감, 너한테 가르쳐줄 게 있는데, '까다롭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야.” “귀신같이 알아챘네. 밀감, 넌 왜 그렇게 신중해?” “네가 경솔한 거야. 스위치가 있으면 누르고, 끈이 매달려 있으면 잡아당기지. 이메일이 오면 닥치는 대로 열어서 바이러스에나 감염되고.” “가는 것처럼 살아보다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그건데.” “아니죠, 의외로 모두들 목적도 없이 막연하게 살아가지 않나요? 물론 얘기도 하고 놀기도 하지만, 뭐랄까 좀 더.” 인간에게는 자기 정당화가 필요하다. 자기는 옳고, 강하고,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언동이 그런 자기인식과 괴리되었을 때, 그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변명을 찾아낸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바람피우는 성직자, 실추된 ..

한밤의 도서관 2012.08.27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어쩔 수 없이 나는 과자 판매 코너에 가서 신제품을 확인 하기로 했다. ‘초콜릿에는 폴리페놀이 함유되어 건강에 좋습니다.’ 라는 멋진 광고지가 붙어 있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세상을 구제하는 것은 초콜릿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초콜릿 동호회를 만들어도 될 정도이다. 나는 그 이후 인간은 필사적으로 달려들면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믿고 있다. 될 리 없다고 부정적으로 만사를 보는 인간의 대부분은 스스로 뭔가를 달성한 적이 없는 자이다. 밤의 어두움은 사람의 감각을 이상하게 만든다. 이모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밤은 인간을 잔혹하게도 만들고, 정직하게도 만들고, 센티멘탈하게도 만들어. 결국 경솔하게 만드는 거야.' 스스로를 타이르듯 말했다. 이런 건 별 거 아냐. 그러고는 숨..

한밤의 도서관 2012.03.22

SOS 원숭이

“왜그래?”헨미누나가 묻는다 “실은 패밀리 레스토랑 질색이거든요” 헨미 누나는 당연히 그 이유를 물었고,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는 다양한 인간이 모여든다 그런 데다 의외로 테이블과 테이블이 가까워 옆에서나 혹은 등 뒤로 다른 사람의 대화가 들리는 경우가 많다 요란스러운 배경음악을 틀어놓은 것도 아니기에 목소리도 알아듣기 쉽다 그게 싫었다 무섭다고 표현해도 좋다 누군가의 당황한 목소리나 상담하는 이야기, 한탄과 서글픈 화제가 들리면 신경이 쓰여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야만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매스컴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원인을 찾아내려 한다 흉악 범죄가 일어나면 그 범인의 생활상, 인간관계, 취미 사건 전의기행을 철저히 파헤친다 상식을 초월한 집요함으로 조사를 한다 잘 생각..

한밤의 도서관 2011.04.13

그래스호퍼

“정치가의 비서가 자살을 한다고,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자살을 하면 관심이 분산되니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비서가 ‘모두 제 책임입니다’라는 어린애도 하지 않을 거짓말을 남기고 목을 매면, 일단 그것만으로도 정치가에게 쏟아지던 비난 수위가 낮아진다. 어리석고 추하고 성가시다. 어리석고 추한 것은 참을 만해도 성가신 것은 거슬린다. ‘당황 할 것 없어, 잠깐 육체가 조화를 잃었을 뿐.’ 바지락을 해감시키는 시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간이 세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바지락의 호흡을 바라볼 때 만큼 마음이 평온해지는 순간도 없다. 세미는 이따금씩 생각한다. 인간도 이런 식으로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기포나 연기로 알아볼 수 있으면 좀 더 살아 ..

한밤의 도서관 2011.03.29

참 잘했어요

ゴールデンスランバー (Golden Slumber)[골든슬럼버] 2010 • 감독 : 나카무라 요시히로 • 원작 : 이사카 코타로 • 출연 : 사카이 마사토, 다케우치 유코, 요시오카 히데타카, 게키단 히토리, 카가와 테루유키 2009년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 중에 열 손가락 안에 꼽혔던 [골든 슬럼버] 시사회로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정말로 기뻤답니다. (은경 님 곰마와용) 근데 같이 보는 분들께 [골든 슬럼버]라는 제목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어려워....ㅆ..... 사카이 마사토는 내가 생각했었던 이미지와 너무 비슷해서 좋았고, 다케우치 유코도 나온다고 해 많이 기대, 소설을 예상외로 잘 살려준 것 같아서 좋았어요. 회상 신이 중간 중간 들어갔던 게 솔직히 좀 지루했어요 -_- + 성형 수술 부분은 정..

먼지쌓인 필름 2010.08.04

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

교노가 진지한 얼굴로 자식에게 설교하듯 말했다.“자기 이야기는 되도록 안 하는 게 제일 좋아. 입 밖으로 내는 말은 말이지, 자기가 생각한 것에 70% 정도가 딱 좋아. 상대방의 말을 10들었잖아? 그럼 이쪽에선 3 이야기 하는거야, 그정도가 베스트지.”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의 1년 후 이야기. 새로운 인물들이 한 명씩 등장, 이전 소설 주인공 4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연히 어떤 사건을 접하게 되는 4명.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를 다 읽은 후 바로 읽기에 들어갔다. 한 마디로 재미있었다. 시간의 흐름도 재미있었고, 나름의 반전도 좋았다. 아 역시 뭔가를 읽는다는 건 뿌듯한 일이다 (뜬금) 그리고 교노가 말한 자기가 생각한 것의 70%. 사실 단 한 사람에게만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는데, 알..

한밤의 도서관 2008.07.07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유키코Ⅰ 시간【時間】 ① 시간 흐름의 주 지점 사이. ② 공간과 함께 인식의 기초를 이루는 것. 인간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졌다고 믿고 있는 것 중 하나. 인간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안심하고 있는 것 중 하나. 인생의 충실도와 비례하여 그 진행 속도가 빨라짐. 따분함에 비해 그 진행 속도가 느려지는데, 수업중에는 완전히 멈춘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도 있음. 구온 Ⅰ 회의【會議】 ① 의견을 맞춤 ② 미리 상의함 ③ 회사원의 노동시간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 참가자 수에 비례해 시간이 길어짐. 목소리 큰 사람이 주도권을 잡음. 효과적인 결과를 얻는 경우는 드물고 막판에 보면 시작 전 상태로 돌아가 있는 경우도 많음 유키코Ⅱ 우연【偶然】 ① 아무런 원인 관계도 없이 예기치 않게 사건이 일어..

한밤의 도서관 2008.07.07

신의 목소리 들어본 적 있어?

비극은 뒷문에서 일어나 알고 있어 신의 목소리 들어본 적 있어? 딜런 아는 구나 고토미가 알려줬어 그래? 목소리가 신의 목소리야 Bob Dylan - Blowin' In The Wind アヒルと鴨のコインロッカ-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2006 • 감독 : 나카무라 요시히로 • 원작 : 이사카 코타로 • 출연 : 에이타, 세키 메구미, 마츠다 류헤이, 오츠카 네네, 오카다 마사키 아아 - 마츠다 류헤이와 에이타의 조합이라니, 원작 내용 이런 건 다 집어치우고 보게 되지 않는가- 부탄인(人), 너는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 사람이세요? 에이타 기럭지만 보는데도 아주 훈훈하다. 마츠다 류헤이는 언제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생각하지 못할 만큼 푹 빠져서 보다가 류헤이 등장을 보고 아! 류헤이도 나오는 영화였..

먼지쌓인 필름 2008.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