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uragawa 2015. 11. 30. 22:13

잔인무도한 살인귀라면 얼마나 편할까요? 아마 사람을 아무리 죽여도 마음 아플 일 없이, 그야말로 자가용 범퍼가 조금 찌그러진 것보다도 못한 일처럼 차례로 죄를 저지르겠지요. 사람 가리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죽여 연쇄살인범, 살인귀, 이상범죄자라고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경멸당하겠지만, 그는 태연하겠지요. 어쩌면 그런 사람일수록 붙잡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동기도 분명치 않고, 피해자하고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경찰이 그런 사람을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을까요?



“확실히 타인의 관대한 마음을 갈가리 짓이겨 국수 양념으로 쓰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세상에는 타인의 생활을 망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인간이 꽤 많다는 소립니다.”

-누명이야기 中



그녀의 여동생 이야기의 뒷부분은 이러했다.

남편은 여동생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지금까지 부모 뒷바라지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인생을 즐겼던 남편이 “딴 여자가 있으니 헤어지자”라고 말한 것이다. 의논이나 제안이 아니라 선언이나 명령에 가까웠다.

“그 남자 집안은 지주여서 그럭저럭 유산이 있었대.”

“상속 문제도 튀어나오는 거야?”

“상속은 부모가 자식한테 하는 거니 며느리는 상관없잖아? 그거 이상하지 않아? 노인을 돌보는 건 보통 며느리들이잖아. 게다가 이혼하면 생판 남이야. 물론 걔도 유산을 노리고 시부모를 돌봤던 건 아니고, 그런 푸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난 이해할 수가 없어. 그렇잖아, 자기 인생의 시간을 깎아가며 뒷바라지를 했는데 ‘이혼하자, 그럼 안녕’이라니. 정말 단순한 간병 도우미였던 거잖아.”



의욕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언제나 엉뚱한 장소에 서 있다. 사람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데도 엉뚱한 결론에만 도달한다. 총을 쏘고 싶은데도 쏠 기회를 자꾸만 놓친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작전을 실행하고 싶은데, 끼지 못하고 있다.



“평화 제일이라는 말은 인류는 모두 형제라는 꿈같은 소리로 들려. 그래서 인기가 없는 거겠지.”



“감정에 휩쓸려 공격하는 것보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생각하는 게 더 사람답습니다.”

“사람답다라.” 구로사와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듯 찬찬히 입에 담았다. “아니, 사람도 동물도 똑같아. 늘 냉정하고 논리적으로 행동하는 건 아니야.”



“광신이 곧 공격성을 낳는다. 그리고 광신을 낳는 데 가장 간단한 방법은,” 구로사와는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고 말했다. “적을 만드는 거야.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가 위험해, 이대로 있다간 당할 거야, 하고 공포를 부추기는 거지. 분노는 일시적이지만 공포는 지속돼. 공포에 맞서기 위해 광신이 태어나지. 더 심하게 말하면 적 자체는 없어도 그만이야. 로렐츠도 그렇게 말했어. 가공의 적을 준비해 깃발을 휘두르면 이성이 나팔을 부는거지. 그런 구조야.”

-사람답게 中



“두 달 전이었어.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에 치여 즉사했어. 비가 내려서 길에서 넘어진 순간에 차가 덮친 거야.”

얼굴이 굳었다. 누가 죽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아무 인연 없는, 얼굴도 모르는 타인이라 해도 확실히 존재 했던 ‘누군가’의 자아가 지금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 ‘누군가’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사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남들과 다툴 정도면 내 의견을 굽히는 게 훨씬 낫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성격이었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온화하네, 평화롭네,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은 전혀 아니다. 남들만큼은 음험했다. 

-측근 이야기 중中



남자는 미팅에 참가한다. 약 두 시간의 극히 평범한 미팅이었다. 즐거운 대화와 놀라운 만남이 있지만, 인생은 변함없다. 물론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



“겉보기로 판단하지 마.”

“미팅은 대개 첫인상으로 결정되는 거야. 옛날에 당신도 그랬잖아. 첫인상이 좋았던 상대가 얘기해 보니 나쁜 인상으로 바뀌는 경우는 있어도, 그 반대는 별로 없다고. 첫인상을 단시간에 만회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군가가 죽거나 우는 세상이다. 우리 가족이나 친척, 친구라면 또 몰라도 그 이외의 누군가를 염려하다 보면 도저히 살 수 없다. 



“당신은 괴롭다고 느꼈잖아. 그 감정을 어디선가 괴로워하는 다른 사람의 고통과 비교해 울음을 참을 필요는 없어. 괴롭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니까. 우리는 누가 어디서 괴로운 일을 겪어도, 눈앞의 생활에 일희일비 할 수 밖에 없어. 좋은 뜻으로나 나쁜 뜻으로나, 모두가 자기 인생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어. 나는 어디서 전쟁이 터지든 아랑곳없이 여기에서 푸딩을 먹고, 그것도 모자라 그 푸딩을 남기기까지 해.”



“전쟁이나 사건, 사고, 질병은 어딘가에 끊임없이 존재합니다. 우는 부모들, 슬퍼하는 아이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넘쳐 나지만 우리는 자기의 시간을, 자기의 인생을, 자기의 일을 똑바로 완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자기 생각만 하면 된다거나, 남의 일은 알 바 아니라고 개의치 않는 것과는 또 다르지만요.”

-미팅 이야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