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마리아비틀

uragawa 2012. 8. 27. 09:00

“밀감, 너한테 가르쳐줄 게 있는데, '까다롭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야.”




“귀신같이 알아챘네. 밀감, 넌 왜 그렇게 신중해?”
“네가 경솔한 거야. 스위치가 있으면 누르고, 끈이 매달려 있으면 잡아당기지. 이메일이 오면 닥치는 대로 열어서 바이러스에나 감염되고.”



“가는 것처럼 살아보다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그건데.”
“아니죠, 의외로 모두들 목적도 없이 막연하게 살아가지 않나요? 물론 얘기도 하고 놀기도 하지만, 뭐랄까 좀 더.”




인간에게는 자기 정당화가 필요하다. 자기는 옳고, 강하고,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언동이 그런 자기인식과 괴리되었을 때, 그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변명을 찾아낸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바람피우는 성직자, 실추된 정치가, 그들은 하나같이 변명을 구축한다.
타인에게 굴복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기 정당화가 발생한다.
자신의 무력과 역량 부족,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다른 이유를 찾아낸다. '나를 굴복시키는 걸 보면 이 상대는 대단히 뛰어난 인간인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나아가 '이런 상황이라면 그 누구도 저항하지 못할 게 틀림없다'며 이해한다. 자존심이 있고 자신감이 강할수록 자신을 설득하는 힘은 크게 마련인데, 일단 한번 그렇게 되어버리면 역학 관계는 명확하게 새겨진다.




독서는 사람의 감정이나 추상적인 개념을 언어화하는 힘으로 이어져서 복잡하고 객관적인 사고를 가능케 해준다.




생각하면 할수록 늪 속으로 빠져들었다. 의혹은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켰고, 늪에 빠지지 않으려고 장대에 매달려보지만, 과연 그 장대가 애당초 신용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 불안해졌다. 한편에는 인내의 뚜껑 틈새를 파헤쳐버리고 앞뒤 생각 없이 행동하길 원하는 또 다른 자신도 있었다. 긴장을 조금만 늦춰도 모든 게 산산조각으로 흩어져버릴 것 같았다.




활기 없이 궁색하게 흘러가는 핏줄기를 보며 왕자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건전지가 다 된 장난감이 훨씬 더 존엄성이 있었다.




소설 문장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우리는 멸망해간다, 제각각 홀로.”
함께한 시간이 제아무리 길더라도 사라져갈 때는 모두 혼자일 뿐이다.




상세한 사실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한시라도 빨리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장소에서 떠나고 싶었다. ‘불행’이 시속 이백 킬로미터 이상으로 질주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불행’과 ‘불운’이 연결되어 나나오를 태우고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