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색스 7

Oliver Sacks: His Own Life, 2019

Oliver Sacks: His Own Life 올리버 색스: 그의 생애 (2019) 감독: 릭 번스 출연: 올리버 색스, 빌 헤이스, 케이트 에드거, 로렌스 웨슐러, 조나던 밀러 더보기 친구가 안 알려줬으면 개봉한지도 몰랐을 올리버 색스 선생님 다큐멘터리!!!!!!!!!!!! +영화소개+ 2015년 1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올리버 색스는 “나의 생애”란 에세이를 뉴욕 타임즈에 기고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다. 의학계의 시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한 베스트셀러 작가, 인간의 뇌라는 경이로운 우주의 탐험가 등 수많은 수식어들 사이에서 ‘이 아름다운 행성에 태어나 지각 있는 존재로 살아간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함’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눈물이 아닌 따스함..

먼지쌓인 필름 2021.09.06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박물관을 좋아했다. 박물관들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세상의 질서를 (생생하고 구체적이지만 정돈된 형태의) 축소판으로 보여주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내가 식물원과 동물원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식물원과 동물원은 자연을 보여주되, 일목요연하게 분류된 자연, 즉 생명의 분류체계taxonomy를 보여준다. 책에는 아쉽게도 실물은 없고 단어만 존재하지만, 박물관은 실물을 조목조목 배열함으로써 ‘자연의 책book of nature’이라는 경이로운 메타포를 구현한다. 우리 모두에게도 라부아지에와 같은 인물―평생 동안 함께할 자아이상ego ideal◆◆이 필요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나와 대화하는 젊은 과학자 친구들 중에는 데이비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심..

한밤의 도서관 2019.08.22

온 더 무브

결국 내 성 정체성은 남이 상관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고, 비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떠들고 다닐 일도 아니지 않은가.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 에릭 콘과 조너선 밀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 주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조너선은 나를 ‘무성애자’로 여긴다고 말했다. 나를 특히 매혹시킨 것은 감각기관의 생리학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색과 입체감과 움직임을 보는가? 어떻게 어떤 것을 알아보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 세계를 시각적으로 이해하는가? 나는 시각편두통을 겪으면서 일찌감치 이런 의문을 품어왔다. 눈부신 지그재그 모양이 나타나는 전조aura 증상 말고도 편두통이 일어나는 동안 색이나 입체감이나 움직임을 지각하는 능력을 상실했고, 심지어 어떤 것을 알아보는 능력까지 상실했기 때문이다. 시력이 ..

한밤의 도서관 2019.07.27

고맙습니다

내게 원소와 생일은 늘 하나로 얽혀 있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원자번호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랬다. 열한 살 때 나는 “나트륨이야”라고 말했고(나트륨은 11번 원소이다), 일흔아홉 살인 지금 나는 금이다. 몇 년 전 내가 친구에게 여든 살 생일 선물로 수은이 든 병을 주었더니―새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는 특수한 병이었다― 친구는 별 희한한 걸 다 준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중에 내게 멋진 편지를 보내어 이런 농담을 전했다. “건강을 위해서 매일 아침 조금씩 섭취하고 있다네.” 나는 노년을 차츰 암울해지는 시간, 어떻게든 견디면서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간으로만 보지 않는다. 노년은 여유와 자유의 시간이다. 이전의 억지스러웠던 다급한 마음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

한밤의 도서관 2018.11.22

색맹의 섬

색맹은 푸르와 핀지랩 두 곳에서 한 세기 이상 존재했으며 두 섬 다 각종 유전자 연구의 주제가 되어왔으나, 그곳 사람들에 관한 인간적 (말하자면, 웰스식의) 탐구며 색맹 사회에서 색맹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러니까 자기만 완전히 색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색맹 부모와 조부모, 색맹 이웃, 선생님까지도 색맹인 곳. 색에 대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 대신 다른 형태의 지각 능력, 다른 형태의 관찰력이 증폭 돼 발달한 문화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관한 연구는 전혀 없었다. 암초 아래에서 아이들이 벌써 헤엄치며 놀고 있는데 아이는 이제 갓 걸음마를 덴 아기이지만 산호가 뾰족뾰족 솟아 있는 물 속으로 겁 없이 뛰어 들면서 신나서 빽빽 고함을 질러댄다. 색맹 꼬마 두세명도 물속으로 뛰어들어..

한밤의 도서관 2018.11.03

의식의 강

다윈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훌륭한 관찰자가 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활동적인 이론가가 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고정되거나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며, 변화와 새로운 경험에 늘 민감하다. 마치 시간이 압축되거나 확장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간의 재배열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한 윌리엄 제임스의 추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시간 판단과 인식 속도는 ‘주어진 단위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사건들을 인식할 수 있느냐’, 즉 시간분할 능력에 달려 있다” 프로이트처럼 책을 많이 쓴 인물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이상하고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책을 그렇게 많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시사적이고 선경지명이 있는 아이디어는 정작 사적..

한밤의 도서관 2018.05.10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철학적인(예를 들면 칸트적인) 의미에서나 혹은 경험론적·진화론적 의미에서 볼 때 판단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동물의 경우 아니 인간의 경우라도 ‘추상적 경향’없이 살수는 있지만 판단 능력이 없다면 당장 사멸하고 말 것이다. 만약 기억의 대부분을 잃어버린다면, 그래서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리고 현재 자신이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다면, 과연 그 사람에게는 어떤 삶(만약 그런게 있다면), 어떤 세계, 어떤 자아가 남게 될 것인가? “그는 순간 속의 존재이다. 말하자면 망각이나 공백이라는 우물에 갇혀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게 과거가 없다면 미래 또한 없다. 끊임없이 변동할 뿐 아무 의미도 없는 순간순간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감각 ..

한밤의 도서관 2017.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