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8

꽃은 알고 있다

아마 여러분은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을 테다. 적어도 4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전히 그렇다. 내가 죽은 사람의 비강에서 나온 꽃가루를 채취하는 방법을 개발한 뒤 여기저기서 나를 '콧구멍 여인'이라고 불렀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그것 말고도 여러 이름으로 불려봤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범죄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세계의 한 측면을 해석해 형사들을 돕는 '법의생태학자'다. 집 안에서 범죄가 일어나면 수사관들이 법의학을 통해 조사할 방법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집 안은 이미 지문과 DNA로 잔뜩 뒤덮여 있고, 옷의 섬유도 여기저기에 묻는다. 행동분석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누군가 무거운 사체를 끌고 갈 수 있는 한계 거리는 약 100미터다. 오늘..

한밤의 도서관 2020.04.18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박물관을 좋아했다. 박물관들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세상의 질서를 (생생하고 구체적이지만 정돈된 형태의) 축소판으로 보여주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내가 식물원과 동물원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식물원과 동물원은 자연을 보여주되, 일목요연하게 분류된 자연, 즉 생명의 분류체계taxonomy를 보여준다. 책에는 아쉽게도 실물은 없고 단어만 존재하지만, 박물관은 실물을 조목조목 배열함으로써 ‘자연의 책book of nature’이라는 경이로운 메타포를 구현한다. 우리 모두에게도 라부아지에와 같은 인물―평생 동안 함께할 자아이상ego ideal◆◆이 필요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나와 대화하는 젊은 과학자 친구들 중에는 데이비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심..

한밤의 도서관 2019.08.22

깃털도둑

“수집가들 덕분에 동물학이 발전했다는 자네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어. 그들은 박물관을 채웠다고 자랑스러워하겠지만, 사실은 자연을 비운 것이지……. 매우 부적절한 생각이라고 생각하네.” 전 세계 곳곳에 기업형 농장이 들어섰다. 하지만 왜가리 같은 새는 새장에서 기르기 힘든 종이기에 가느다란 면실로 위아래 눈꺼풀을 꿰매어 앞을 보지 못하게 하고 길들이기도 했다. 새들은 이렇게 무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아갔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당시,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배에서 가장 값 나가고 보험료가 높았던 물건도 바로 깃털 상자 40개였다. 친애하는 여성 동지들이여, 신은 우리에게 머리를 주었습니다. …… 우리에게 평생의 과업은 남자든 혹은 누구라도 다른 사람을 유혹하거나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

한밤의 도서관 2019.08.15

온 더 무브

결국 내 성 정체성은 남이 상관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고, 비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떠들고 다닐 일도 아니지 않은가.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 에릭 콘과 조너선 밀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 주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조너선은 나를 ‘무성애자’로 여긴다고 말했다. 나를 특히 매혹시킨 것은 감각기관의 생리학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색과 입체감과 움직임을 보는가? 어떻게 어떤 것을 알아보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 세계를 시각적으로 이해하는가? 나는 시각편두통을 겪으면서 일찌감치 이런 의문을 품어왔다. 눈부신 지그재그 모양이 나타나는 전조aura 증상 말고도 편두통이 일어나는 동안 색이나 입체감이나 움직임을 지각하는 능력을 상실했고, 심지어 어떤 것을 알아보는 능력까지 상실했기 때문이다. 시력이 ..

한밤의 도서관 2019.07.27

실은 나도 과학이 알고 싶었어 2

사람들은 신문을 오려 스크랩북에 모으곤 한다. 주로 부고나 수상 소식, 중요한 사건 등이다. 하지만 몇 년 지나면, 신문 기사가 엉망으로 변질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산과 리그닌이 없는 종이에 신문을 복사하는 거다. 일반 필기용 종이도 좋다. 신문지를 오려서 스크랩북에 풀로 붙이는 것보다는 훨씬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뻔한 질문이 떠오른다. 양자 역학의 이점은 뭘까? 많은 현대 기술이 양자 역학에 기초한다. 레이저, 트랜지스터, 마이크로칩, LED, MRI, 전자 현미경, USB 메모리 원자를 쪼개면 어떻게 될까?원자를 쪼개면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 이 과정을 핵분열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 원자나 핵분열을 하지는 않는다. 핵분열은 적합한 원자를 선택해야 하는데, 핵발전이나 핵폭탄 제작에 사용하려면 ..

한밤의 도서관 2019.04.30

실은 나도 과학이 알고 싶었어 1

치아 교정기는 어떻게 이를 바르게 만들까?치아 교정기는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첫 번째로 아이의 이를 곧게 만들고, 두 번째로 부모가 치료비 때문에 투잡을 뛰게 한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손톱은 사람이 죽은 뒤에는 자라지 않는다. 단지 손톱 주변의 살과 피부가 쪼그라들어 손톱이 긴 것처럼 보일 뿐이다. 케라틴은 두 개의 노벨상 수장자인 라이너스 폴링이 처음 언급했다. 그는 양자물리학을 화학 결합에 적용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핵무기 확산에 반대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극심한 추위에서는 몸을 건조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지는 등의 사고로 몸이 젖으면, 체온을 평소보다 25배 더 많이 빼앗긴다. 위스콘신대 천연자원학과의 어류생물학자인 워런 처칠은 '최악의 저체온증을 겪고 살아남..

한밤의 도서관 2019.04.13

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

모의 수술에 쓰이는 시신을 포르말린 방부 처리하지 않는 까닭은 포르말린 용액이 단백질을 응고시켜 시신이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인체 조직과 유사한 상태로 학생들이 임상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포르말린 방부 처리하지 않은 시신을 사용한다. 모의 수술에 사용하는 시신에 대한 규정은 더 엄격하다. 시신은 반드시 사후 여덟 시간 안에 츠지 대학으로 보내 영하 30도로 급속 냉동해야 한다. 수업 3일 전에 해부에 관련된 잡무를 돕는 해부 기사가 시신을 꺼내 해동하는데, 이 시신 스승은 포르말린 고정固定을 거치지 않아서 피부가 딱딱하지 않고 조직의 질감이 살아 있는 인체에 가깝다. 다만 체온, 심장박동, 호흡, 혈류 등 생리 현상이 없을 뿐이다. 시신 보관실에서 기다리는 3,4년 동안 해마다 청명절이..

한밤의 도서관 2019.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