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

uragawa 2019. 4. 13. 20:19

모의 수술에 쓰이는 시신을 포르말린 방부 처리하지 않는 까닭은 포르말린 용액이 단백질을 응고시켜 시신이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인체 조직과 유사한 상태로 학생들이 임상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포르말린 방부 처리하지 않은 시신을 사용한다.
모의 수술에 사용하는 시신에 대한 규정은 더 엄격하다. 시신은 반드시 사후 여덟 시간 안에 츠지 대학으로 보내 영하 30도로 급속 냉동해야 한다. 수업 3일 전에 해부에 관련된 잡무를 돕는 해부 기사가 시신을 꺼내 해동하는데, 이 시신 스승은 포르말린 고정固定을 거치지 않아서 피부가 딱딱하지 않고 조직의 질감이 살아 있는 인체에 가깝다. 다만 체온, 심장박동, 호흡, 혈류 등 생리 현상이 없을 뿐이다.



시신 보관실에서 기다리는 3,4년 동안 해마다 청명절이나 설날, 시신 스승의 생일, 기일이 되면 가족들이 찾아와 멀리서 바라보며 인사드린다. 어떤 가족들은 시신 보관실 바깥벽에 붙어 있는 시신 스승의 명패 옆에 그리운 마음을 가득 적은 메모지나 카드를 남기기도 한다.



우리는 환자들이 시신을 기증하기 위해 적극적인 치료를 포기하는 것을 장려하지 않는다. 치료를 위해 부분 절개 수술을 한 경우 상처가 아물면 시신을 기증할 수 있다. 암 환자가 화학적 치료나 방사능 치료를 받아도 시신을 기증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의과대학이든 간에 학생들은 돈도 많이 벌고 생활의 질도 높일 수 있는 오관五官과 관련된 안과, 구강과, 이비인후과를 선택하려고 한다. 의료 분쟁이 많고 업무 스트레스가 큰 과는 모두 기피한다. 그러다 보니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의 4대 과가 텅텅 비게 되었다. 그 위에 응급의학과를 더한다면 5대 과가 텅텅 비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해부’하면 직감적으로 ‘절개’를 떠올린다.
하지만 ‘해부학’은 사실 단순한 절개가 아니라 생명체의 형태를 그려내는 과학이다. 육안해부학은 주로 인체의 서로 다른 기관과 구조의 특징을 육안으로 관찰하는 학문이다.



해부도는 학생들이 구별하기 쉽도록 혈관과 신경을 서로 다른 색깔로 표시해놓았다는 점이 실제 인체와 다르다. 하지만 인체 조직의 실제 모습은 이처럼 색깔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경험이 적은 학생들에게는 신경과 혈관이 똑같이 생긴 것으로 보여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다.



허파의 검은 반점을 본 학생들은 시신 스승이 살아생전에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평생 담배를 피우지 않은 시신 스승들의 허파에도 검은 반점이 가득하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대기오염, PM 2.5의 초미세먼지 그리고 요리할 때 기름 또는 가스 등이 연소되면서 생기는 유연 등으로 허파에 유사한 검은 반점이 생긴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허파에 분진이나 공중에 떠다니는 미세먼지가 공기를 따라 들어와 허파 안에 있는 대식세포에 잡아먹히는데, 이런 이물질 가운데 분해되기 어려운 부분은 모두 대식세포 안에 저장된다. 이런 대식세포들이 대량으로 밀집하여 육안으로 보이는 검은 반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위장약이나 요구르트 광고를 보면 위를 빵빵하고 매끄러운 모양으로 그려서 표현하는데, 실제로는 납작하고 주름투성이인 J자 모양의 자루처럼 생겼다. 위는 산도가 강한 위산을 품고 있으므로 위벽이 아주 두껍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위벽은 아주 얇다.



지방간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간 주위에 지방층이 한겹 덮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지방간은 간세포 안에 많은 지방이 있는 것을 말한다. 이 과다한 지방은 기름방울 형태로 간세포 안에 존재하는데 다른 조직이나 체액과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초음파로 검사해야 찾아낼 수 있다.



‘미용 & 스파’ 전단지를 받을 때가 있다. 전단지에는 “독소 배출로 피부 디톡스Detox. 예뻐지는 림프 마사지”와 같은 홍보 문구와 특수 마사지나 물리요법으로 림프의 독소 배출을 돕는다는 설명이 쓰여 있다. 해부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림프액은 조직액으로 마지막에는 정맥계로 들어간다. 그런데 어떻게 마사지로 림프가 독소를 배출하게 한다는 것인지…….



의료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아킬레스건이 끊어져도 너무 오래 지체하거나 상황이 복잡하지 않으면 수술로 다시 이을 수 있다.



얼굴근육이 다른 근육과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다른 부위(예컨대 팔이나 다리)의 근육은 양쪽 끝이 뼈에 붙어 있어 수축하면 시작 부분이 끝 부분의 뼈를 움직이게 만든다. 하지만 얼굴근육은 한 끝은 뼈에 붙어 있고 다른 한 끝은 피부에 붙어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까닭이다.



꿈에 시신 스승이 나타났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한 학생은 공부하다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는데, 끔에 시신 스승이 나타나 일어나 정신 차리고 공부하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또 어떤 학생은 기분이 울적했는데 꿈에 시신 스승이 나타나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웠다고 한다.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이런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마음에 있으니 꿈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이런 현상은 꿈에서도 시신 스승이 나타날 정도로 츠지 대학의 학생들과 시신 스승의 관계가 친밀하다는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