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멀티플 시그니처

uragawa 2019. 4. 15. 20:11

‘작가’라는 말은 어딘지 중요한 인상을 풍긴다. 창작이나 자율성처럼 매력적인 개념을 암시한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도대체 어떻게 작가가 되는지 답하기는 어렵다. 디자이너/작가란 정확히 무엇이며 작가가 저작한 디자인이란 과연 어떻게 다른지 판단하는 일은 전적으로 ‘작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어떤 기준으로 그런 자격을 부여하느냐에 달렸다.



기술적 숙련도야 어지간한 실무 디자이너라면 충족할 수 있을 테지만, 여기에 개성적 스타일을 더하면 범위는 좁아진다. 두 기준에 맞는 인물 목록은 아마 익숙한 이름으로 채워질 것이다. 바로 그런 작품이 흔히 책에 실리고 상을 받고 칭찬을 듣기 때문이다. 물론 선택과 배제를 통해 특정 작품을 거듭 소개하는 관행은 스타일 면에서 통일되고 일관된 전작을 조성한다. 그러나 뛰어난 기교와 스타일만으로는 작가가 될 수 없다.



전자 태그 같은 것으로 사물을 웹에 연결하는 이른바 ‘사물 인터넷’을 두고, 저술가 케빈 켈리가 한 말이 있다.
농담 같지만, “신발은 굽 달린 반도체, 자동차는 바퀴 달린 반도체”라는 말이다. 신발이나 자동차는 모두 어딘가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반도체일뿐이다. 사물 인터넷에서 중요한 건 물성이 아니라 메타데이터가 제공하는 흔적이다. 우리가 어디에 갔는지, 얼마나 썼는지, 얼마나 멀리 갔는지, 뭔가 고장 난 건 없는지 등등. 명령어는 이런 물건을 생산하고, 물건은 다시 데이터를 생산한다.



기업 아이덴티티 프로그램이 관리하려 했다면, 브랜드 프로그램은 목소리를 생성하려 한다. 외관은 획득한 유행이지만(본성상 피상적이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지만), 목소리는 (배우나 모창 가수를 제외하면) 개체마다 생리적으로 고유하다. 그러므로 브랜드 시스템을 디자인 하려면 무한한 발화를 생성할 수 있는 언어적 규칙을 수립해야 한다. 개별 발화의 어조는 상대방이나 맥락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경직된 아이덴티티 시스템은 기업체가 발화를 충분히 조절하는 데 방해가 된다.



디자이너는 언제나 물건을(산출물을) 만들지만, 값이 똑 떨어지는 물건만 만들지는 않는다. 간단한 연구에서도 아이디어나 효과, 감정 등이 나올 수 있다. 이는 인쇄나 제본, 프로그래밍, 시공과 무관할 수도 있다. 디자이너가 만드는 ‘물건’은 디자인 과정상 어느 단계에서든 만들어진다. 언제나 완성되고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형 프로젝트, 즉 결코 완료되지 않는 프로젝트는 여러 프로젝트와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된다. 이런 프로젝트에는 집요하고 근면하면서도 완전히 만족하기는 어려운 시도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스튜디오가 하는 일이자 삶이다.



디자인은 전문직인가? 지금은 이상한 질문처럼 들리겠지만, 그래픽 디자이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디자이너의 어머니조차) 모른다던 1990년 대에는 흔히 나오던 질문이었다. 그때는 스티브 잡스와 마사 스튜어트가 유명해지기 전이었고, 풀다운 폰트 메뉴를 갖춘 매킨토시와 월드 와이드 웹과 브랜딩에 새삼 집착하는 경영 컨설턴트가 무수히 등장하기도 전이었다. 어쩌면 인터넷이야 말로 사상 최고의 그래픽 디자인 교육자인지 모른다. 갑자기 무수히 많은 사람이 그래픽 디자인의 잠재성을 두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웹사이트라는 것부터가 100퍼센트 픽셀에 0퍼센트 벽돌로 지어지는 곳이니까. 모든 이가 하루아침에 전문가가 됐다. 지난 20년 사이에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폭발한 결과, 아무도 그래픽 디자인이 뭔지 모르던 상황은 역설적으로 누구나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는 상황으로 바뀌고 말았다. 한때는 익명성에 위협받더니, 이제는 보편성에 흔들리는 상황이다. 어떤 어머니든 이제는 디자인이 뭔지 알 뿐만 아니라, 집에서 디자인을 실천하기도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전문가와 사이비를 구별할 방도가 있을까?
정답은 ‘없다’이다. 전문가 개념은 자존감의 지스러기에 매달리는 디자이너 집단이 인위적으로 세운 장벽이다. 어떤 실천 기준을 마련해 진짜 그래픽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공식적으로 가리고 아마추어의 공세를 물리쳐야 한다! 자격증 시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도 출제 문제를 정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