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부터 ~ 1693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위장.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조금씩은 하고 산다. 괴물도 햇살 아래 당당하게 걸어 다니기 위해 인두겁을 뒤집어쓰는 법을 배워 위장한다. 이제 와서 보니 진실은 중요치 않았다. 전부 꾸며 내면 그만이었다. 대중이 납득할 만한 살인범의 요소들을 한데 모으니 살아 움직이는 흉악범이 탄생했다. 증명은 필요치 않다. 애초에 쓸데없는 짓이고, 혼란의 파도 위에 이슈를 올려놓으면 그만이었다. 아이러니하고 우습지만 스녠은 차마 웃을 수 없었다. 일에 찌든 회사원과 시체의 차이점을 면밀히 연구해 본다면, 유일하게 다른 점은 아마 호흡의 유무뿐일 것이다. 버스가 아침의 차량 행렬을 따라 정류장에 도착했다. 장페이야는 생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다른 학생들을 따라 버스에 몸을 밀어 넣었다. 차 안에서 각종 냄새가 섞여..

한밤의 도서관 2021.03.14

책에서 한 달 살기

책은 읽는 동안 즐거우면 된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날의 독서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이 아닌 다음에야 굳이 내용을 외우고 있을 필요는 없다. 마치 여행처럼 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될 뿐,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습득하고 기억해 둘 의무는 없다. ‘책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문득 궁금해졌다. ‘일단 해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나 지켜보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책은 참 신기하다. 읽을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여러 번 읽는 게 고역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알고 있어도 좋아하는 부분을 자꾸 반복해서 접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점심을 먹기 전, 숲을 바라..

한밤의 도서관 2021.03.11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해를 거듭할수록 생일이 서글퍼진다. 나이 듦에 따른 외로움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양어깨를 덮쳐누르는 뚜렷한 불안 때문이었다. -가족 여행 스승의 말에 따르면 결말을 아는 영화를 즐길 수 있으면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이며, 아는 결말을 한 달간 즐길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영사기사라고 한다. -영화 팬 오우라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짧은 야간 아르바이트에는 휴식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반년 전에 들어온 접수 담당 여직원이 기혼인지 미혼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과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함이 이곳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는 큰 이유이지만, 희박한 인간관계 속에 가끔 이런 대화가 오가면 묘하게 반가운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미안, 좋아해 청경채와 달걀볶음에 참기름을..

한밤의 도서관 2021.03.10

For Sama, 2019

누가 지금 상황을 보고 일일 폭격 드라마래 폭탄 출연진도 화려해 대통령이 캐스팅한 미사일 포탄, 총알... For Sama 사마에게 (2019) 감독: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왓츠 출연: 와드 알-카팁, 사마 알-카팁, 함자 알-카팁 더보기 시리아 난민에 대해 잘 몰랐다면 꼭 이 영화를 보라고 하고 싶다. 2011년 3월 학교 담벼락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낙서를 적은 10대들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사건을 시작으로 알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 알 아사드 정권의 무자비한 진압이 가해지면서 점차 무장 투쟁으로 변모했다. + 솔직히 아버지가 의사니까 이런 환경에서도 출산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본인들도 버티기 힘든 환경인데 출산이라니... 사마는 폭격이 터져도 지하로 도망쳐..

먼지쌓인 필름 2021.03.02

犬に名前をつける日, 2015

犬に名前をつける日 Dogs Without Names,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 (2015) 감독: 야마다 아카네 출연: 고바야시 사토미, 카미카와 타카야 더보기 주연 배우 고바야시 사토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 분명 드라마 영화를 고른 것 같은데? 할 정도로 완전 다큐멘터리다. 찾아보니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결합한 다큐드라마 형식을 통해 유기 동물의 안타까운 현실을 더욱 생생하게 전하는 작품 이라는 설명이 있었음 ㅎㅎ 자신의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며 동물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변심해서, 또는 취미처럼 샀다 버리고 주인이 직접 보호소로 데려와 안락사시켜달라는 사람까지... (안락사 내용을 보면서 단편 일본드라마 [이 거리의 생명에] 생각이 났..

먼지쌓인 필름 2021.02.22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2019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Night of the Undead (2019) 감독: 신정원 각본: 신정원, 장항준 출연: 이정현, 김성오, 서영희, 양동근, 이미도 더보기 킬링타임용으로 봐볼까? 뭐 이미 제목이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내용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흘러갈까!!!!! 라는 마음은 안 생김 ㅋㅋㅋ 아 근데 진짜 양동근 하드캐리네 브로콜리 살릴 사람 이 분 말고 없잖아 ㅋㅋㅋㅋㅋㅋ 사무실에 당당하게 내건 자격증 웃음 버튼 ㅋㅋㅋㅋㅋ + 이미도 배우 굳~~~이 계단에서 굴려가며 등장시켜야 했나? 라는 의문 여배우들 동창 모임에서 사투리 안 쓰려 애쓰게 만든 장면은 개인적으로 불쾌했는데 ‘사투리는 짜치잖아-’ 로 묘사한 것은 표준어 사용하는 사람의 차별주의적 시선 아닌가 하는 생각 그리고 PPL을 이렇게 부담스..

먼지쌓인 필름 2021.02.21

조금 부족한 여자

어차피 망한 인생 이렇게 쓰레기처럼 살아서 너무 좋아 조금 부족한 여자 Incomplete Woman (2020) 감독: 허수영 더보기 +영화소개+ 어느 날 아침. 토막 난 여자의 몸이 발견된다. 하체와 왼손 외에 다른 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어떤 침입의 증거도 찾을 수 없어 사건이 미궁에 빠지려던 찰나, 남아있던 왼손이 다섯 손가락으로 일어나 증언을 한다. 서로를 너무 싫어한 나머지 떠나버린 다른 몸을 찾아 하체와 왼손은 길을 나선다. [22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네이버 인디 극장 ✕ 서울 독립 영화제 뭐야! 너무 재미있잖아! + ㅇ ㅏ 뭐야 처음부터 너무 내 스타일?인데 라고 생각한 사람 저요. 어젯밤 이야기로 넘어가서 머리 분리될 때 엄청 깜짝 놀람 ㅋㅋㅋ 이야기 다 들은 경찰 아저씨 흔한 일이..

먼지쌓인 필름 2021.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