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803

꿈의 서점

GOKUCHU BOOKS를 시작한 후 사고방식에 변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책은 고상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눈앞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죠. 책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일용품적이기도 하고, 정크푸드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쓰임과 가치는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고 실감하게 되었어요.” 하고 기타지마 씨는 이야기한다. 주식회사 아톰쇼보는 재활용 서점으로 운영됩니다. 필요 없게 된 서적을 일본 전역에서 받고 있지요. 10엔, 100엔, 500엔, 1000엔. 가격을 이렇게 총 네 가지로 분류해 판매하고, 수익금 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합니다. 동일본 대지진이나 구마모토 지진의 재해지역이나 고아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지원하는..

한밤의 도서관 2021.03.18

서점 일기

멋모르는 사람들에게 ‘종고 서점 운영’은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 옆에서 안락의자에 슬리퍼 신은 발을 올리고 앉아 입에 파이프를 물고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노라면, 지적인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와 흥미로운 대화를 청하고 책값으로 두둑한 현금을 놓고 나가는 그런 목가적인 일이 결코 아니라는 효과적인 경종을 울려준다. 대부분의 책 거래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해서 최근에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 고인의 책을 처리하는 일을 맡게 됐다는 얘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연히 그 사람들은 아직 고인을 애도 중인 경우가 많아서 얘기를 듣다 보면 아주 약간이라도 그 슬픈 감정에 동요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고인이 남긴 책들을 훑어보다 보면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관심거리는 무엇이었는지..

한밤의 도서관 2021.03.15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위장.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조금씩은 하고 산다. 괴물도 햇살 아래 당당하게 걸어 다니기 위해 인두겁을 뒤집어쓰는 법을 배워 위장한다. 이제 와서 보니 진실은 중요치 않았다. 전부 꾸며 내면 그만이었다. 대중이 납득할 만한 살인범의 요소들을 한데 모으니 살아 움직이는 흉악범이 탄생했다. 증명은 필요치 않다. 애초에 쓸데없는 짓이고, 혼란의 파도 위에 이슈를 올려놓으면 그만이었다. 아이러니하고 우습지만 스녠은 차마 웃을 수 없었다. 일에 찌든 회사원과 시체의 차이점을 면밀히 연구해 본다면, 유일하게 다른 점은 아마 호흡의 유무뿐일 것이다. 버스가 아침의 차량 행렬을 따라 정류장에 도착했다. 장페이야는 생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다른 학생들을 따라 버스에 몸을 밀어 넣었다. 차 안에서 각종 냄새가 섞여..

한밤의 도서관 2021.03.14

책에서 한 달 살기

책은 읽는 동안 즐거우면 된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날의 독서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이 아닌 다음에야 굳이 내용을 외우고 있을 필요는 없다. 마치 여행처럼 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될 뿐,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습득하고 기억해 둘 의무는 없다. ‘책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문득 궁금해졌다. ‘일단 해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나 지켜보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책은 참 신기하다. 읽을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여러 번 읽는 게 고역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알고 있어도 좋아하는 부분을 자꾸 반복해서 접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점심을 먹기 전, 숲을 바라..

한밤의 도서관 2021.03.11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해를 거듭할수록 생일이 서글퍼진다. 나이 듦에 따른 외로움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양어깨를 덮쳐누르는 뚜렷한 불안 때문이었다. -가족 여행 스승의 말에 따르면 결말을 아는 영화를 즐길 수 있으면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이며, 아는 결말을 한 달간 즐길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영사기사라고 한다. -영화 팬 오우라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짧은 야간 아르바이트에는 휴식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반년 전에 들어온 접수 담당 여직원이 기혼인지 미혼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과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함이 이곳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는 큰 이유이지만, 희박한 인간관계 속에 가끔 이런 대화가 오가면 묘하게 반가운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미안, 좋아해 청경채와 달걀볶음에 참기름을..

한밤의 도서관 202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