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8

웨스 앤더슨 (2023)

의 승무원들은 비니를 제각기 약간 다른 각도로 쓰고 있는데, 앤더슨이 모자의 위치를 일일이 잡아주었다. 앤더슨은 삼형제 중 둘째다. 큰형 멜은 현재 의사이며, 막내 에릭 체이스는 아티스트다. 에릭의 그림은 앤더슨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며 DVD 커버로 쓰이기도 했다. 형제애는 앤더슨이 자주 다루는 소재다. 해양학자들의 형제애건 카키 스카우트의 형제애건 유럽의 최고급 호텔에 근무하면서 비밀협회를 결성한 컨시어지 사이의 형제애건 말이다. 심지어 는 삼형제가 주인공인 영화다. 그의 어머니 텍사스 앤 앤더슨(결혼 전 성은 버로스)은 한때 고고학자였다. 그래서 앤더슨 형제들은 유적 발굴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혼 후 혼자서 사내아이 셋을 기를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그녀는 부동산 에이전트가 됐다. ..

한밤의 도서관 2023.10.18

애니 앳킨스 컬렉션

나는 소품 담당자 로빈 밀러의 책장에서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배구공)을 만난 적이 있다. 나 역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사용된 멘들스 박스 두어 개를 내 작업실에 자랑스럽게 진열해 놓았다. 하지만 세트 데코레이터가 진정한 수집가라서 이런 물건을 몇 서랍씩 보관하지 않는 한, 그래픽 소품 대부분은 보관되지 않는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종이는 특히 고생이 많다. 뜨거운 조명과 배우들의 땀에 젖은 손 때문에 금세 손상 된다. 'MENDL'S'라는 단어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담당했고, 나머지 레터링과 가느다란 줄 세공은 내가 직접 나섰다. 그런데 철자 확인 과정을 세심하게 거치지 않은 바람에 촬영 중반이 되어서야 내가 실수로 'pâtisserie'(파티스리, 제과점이라는 뜻)라는 단어에 't'를 한 번 ..

한밤의 도서관 2020.06.06

이차원 인간

첫 학기에 나는 길을 잃고 절망했다. 이곳은 절대로, 내가 마음 놓고 있을 편안한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집에 있는 내 드로잉 테이블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랬다, 이곳은 규칙과 새로운 용어가 넘쳐났고, 각기 정교한 정의가 내려져 있었지만,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더 모호해졌다. 혼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나 역시 혼돈 속에서 자랐으니까. 하지만 질서? 그것은 끝도 없는 프로토콜이었고, 동시에 추상이었다. 아니, 잠깐, 미안, 비구상이라고 해야겠다. 그것은 ‘이 흰 벽을 두 시간 반 동안 응시한 후 각자 본 것을 이야기한다’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디자인 학교가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그렇게 실존주의적이어야 한다면, 나는 분명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내 포트폴리오에 좋은 반응을 보였..

한밤의 도서관 2019.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