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학기에 나는 길을 잃고 절망했다. 이곳은 절대로, 내가 마음 놓고 있을 편안한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집에 있는 내 드로잉 테이블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랬다, 이곳은 규칙과 새로운 용어가 넘쳐났고, 각기 정교한 정의가 내려져 있었지만,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더 모호해졌다. 혼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나 역시 혼돈 속에서 자랐으니까. 하지만 질서? 그것은 끝도 없는 프로토콜이었고, 동시에 추상이었다. 아니, 잠깐, 미안, 비구상이라고 해야겠다. 그것은 ‘이 흰 벽을 두 시간 반 동안 응시한 후 각자 본 것을 이야기한다’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디자인 학교가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그렇게 실존주의적이어야 한다면, 나는 분명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내 포트폴리오에 좋은 반응을 보였지만 나를 채용하지는 않았다. 거절이 쌓여가자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훨씬 어려워질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 작품에 관해서라면 할 이야기가 많았고, 얼마든지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디자이너의 작품이 이 세상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돈을 받는다는 개념도 낯설었다. 얼마나 받기 원하는지, 시간당 임금이 얼마인지 물었을 때 (프리랜서 프로젝트의 경우)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몰랐다.
디자이너의 책임 중 하나는 과정을 관리하는 일이고, 이 경우 과정의 조율이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이었다. 이 점에서 나는 실패했다. 디자이너에게는 대개 고객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디자이너라면 그 디자인이 훌륭할 수 있도록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디자인 작업은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주문을 받는 일이 아니다. 또한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고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돌봄을 받고 싶은 간절함이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에 대한 갈망이다.
한동안 혼자 일하면서 참신함은 닳아 없어지고 대신 명확성을 갖게 되었다. 예전 내 경험들을 다른 방식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항상 다른 이들, 매니징 파트너, 영업 임원, 고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을 비난했다.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은,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결국 내가 처한 상황은 궁극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때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늘 선택의 여지는 있기 마련이다. 좋든 싫든 선택의 많은 부분은 결국 돈이다.
학생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나 자신에게도 때때로 상기시키는 말이 있다. ‘길을 잃는 것도 괜찮다.’
학생들은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무엇을 시각화하려 애쓰는 경향이 있다. 디자이너로서 할 수 있는 최악의 태도다. 디자인하기 전 어떤 것일지 알고 시작한다면 불확실성과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덜 수 있지만, 디자인이 무엇인가 하는 명제와는 대척점에 서게 된다. 디자인은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미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않다면 왜 굳이 그것을 하겠나?
나 자신을 포함해 그래픽디자이너 대부분을 괴롭히는 오해가 있다. 꿈의 프로젝트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 기관, 밴드 등의 일만 할 수 있다면……그렇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하는 식이다. 이 생각은 끈질기게 계속된다. 왜냐하면 그래픽디자이너들은 대부분의 경우, 새 고객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한 상황에 지속적으로 처하기 때문이다. 맡은 일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해도 여전히 일정 기간 조사를 한 후에야 디자인을 시작할 수 있다. 따라서 늘 전혀 지식이 없거나 연관성이 없는 분야를 디자인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이 좋은 일이라고 자신을 다독인다. “우리는 늘 배우고 있다”라고. 물론 이 말이 진실이긴 하지만 우리가 정말 이 말을 믿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맡았던 그저 영업 이사들이 누군가와 골프를 쳤기 때문에 따올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나 역시 꿈의 프로젝트에 관한 망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망상이 깨진 것은 마침내 처음으로 꿈의 프로젝트를 받았을 때였다.
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품이 미래에도 이해 받을 수 있도록 많은 고려를 해야 할까? 가능하기는 한 이야기인가? 가능하다고 해도, 우리가 디자인하는 모든 것은 허접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궁극적으로는 오해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닐까?
좋아하든 싫어하든 스마일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스마일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아는가? 이것은 상상과 달리 전 세계적 유행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 한 것이 아니었다. 이 스마일은 하비 볼Harvey Ball이라는 그래픽디자이너가 1963년, 한 보험회사에서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이미지를 제작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만든 것이다. 디자인의 소요된 시간은 10분 이었고, 그는 45달러를 받았다. 이 스마일은 수백만 개의 배지와 티셔츠 등 여러 상품에 등장하게 되었고, 그 후 인터넷 메시지와 이모티콘 등에까지 전파되었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었다. 주된 이유는 상업적 효용 가치가 있었고 하비 볼이 그 스마일의 저작권이나 상표권을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와 ‘no’라는 단어와의 관계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초기에는 나도 no라는 말을 하곤 했고, 그러면 상대의 방어적인 반응이나, 논쟁, 때로는 고함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런 종류의 난관은 훨씬 더 요령껏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아주 힘들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