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라서 못 하는 일이 있는 게 싫어서 뭐든 혼자서도 해왔고 또 꽤 잘 해왔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세상에는 여럿이 해야 더 재밌는 일도 존재한다는 걸.
자신이 두려워하는 뭔가를 영원히 피해 다닐 수 없다면 제대로 부딪쳐볼 필요도 있다는 거다. 늘 머물던 안전지대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어보면 세상에 생각해온 것만큼 큰 위험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겁쟁이일수록, 위험한 상황을 좀처럼 만들지 않는 자신의 본능적 감각을 믿어봐도 좋을 지 모른다.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어서 좋은 점은, 세상이 말해주지 않는 비밀을 하나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게 뭐냐면, 결혼을 안 해도 별일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결혼 안 해봐서 아는데, 정말 큰일 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생길 수 있을 별일 큰일을 곰곰 생각해봐도, 앞으로 점점 더 결혼할 확률이 낮아질 것 같다는 정도 외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나도 앞날에 대한 고민은 매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걱정들이다. 100세 시대라는데 언제까지 회사 생활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을까? 앞으로 내 커리어의 어떤 점들을 더 계발하거나 보완해야 할까? 20년 가까이 직장 생활 하며 꼬박꼬박 부어온 국민연금은 65세부터나 받을 수 있는데 그 전에 은퇴하면 뭘 먹고 사나? 아니 국민연금 잔고 자체가 바닥나서 내가 납부한 돈을 떼어먹히는 건 아닐까? 큰 병이 들어서 너무 빨리 죽으면 어떻게 하지? 잔병치레를 하며 너무 오래 살면 또 어떻게 하지? 보험을 좀 더 들어놔야 하나? 하나씩 써놓고 보니 점점 더 걱정이 커진다. 하지만 내가 결혼한 상태라고 가정해봐도 이런 고민들이 사라지거나 딱히 줄어들 것 같진 않다.
많은 사람들이 싱글로 사는 기간을 결혼을 준비하는 기간처럼 생각한다. 결혼을 점점 늦게 하는 추세인 요즘은 그 기간이 아주 길어져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 기간을 ‘진짜 인생’의 서막처럼 여긴다면 긴 기간 동안 인생을 유예하며 사는 셈이 된다.
사람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들이기로 결정한 이상은,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앞으로 100세 시대에는 한 사람이 두 번쯤 결혼하고 직업은 세 개쯤 가지는 게 보편적이 될지도 몰라.” <W Korea>에서 함께 일했던 이혜주 편집장님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사정은 알기 어렵지만, 내 경우에는 마흔을 넘기면서 슬슬 고민이 시작되었다. 결혼은 한 번도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두 번째 직업을 선택해볼 때라는 직감이 툭툭 나를 건드렸다.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볼 때마다 그 미래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찌 보면 이것도 우리의 노후 계획이다. 사람들은 연금보험, 부동산, 자식에게 투자 등 각자의 방법으로 노후를 준비한다. 우리는 하루에 한 곡씩 음악을 쌓으며 노후를 그려본다. 그 술집이 실제로 생기든 그렇지 않든, 매일 그곳을 그려보며 즐거워하고 있으니 이미 남는 장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