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로보텀 3

미안하다고 말해

“저희 수사본부입니다. 어떻습니까, 교수님?” “독특한데요.” “일부러 가족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봤습니다. 같이 마시고, 같이 먹고. 누구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실수가 있었다면 솔직히 고백하고, 의문 제기도 부담 없이 할 수 있죠. 저희 팀은 영국 최고의 사건 해결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당신들 어머니가 아주 자랑스러워하시겠군. 나는 생각한다. 경감의 건방진 태도가 무척 거슬린다. “성공한 사이코패스라는 이 개념은 의료계에서 자주 잊히거나 무시당합니다. 우리는 사회 주변부를 맴도는 이들만을 연구할 뿐입니다. 중퇴자와 성취도 낮은 사람들. 지적 능력과 야망이 부족한 사람들. 우리들 틈으로 완벽히 파고든 사이코패스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

한밤의 도서관 2020.05.25

나를 쳐다보지 마

이처럼 상세한 편린(片鱗)들은 아동기의 기억 대부분이 멀리 사라진 후에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의 마지막 날은 내 마음에 철썩 들러붙어, 감은 눈꺼풀 속에서 일렁이며, 빛과 어둠으로, 마치 옛날 홈무비처럼 끊임없이 재상영된다. 나는 기다림을 싫어하지 않는다. 인내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때를 보는 행위이다. 우리는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고 늙기를 기다린다……. 어떤 날엔, 아니 대부분의 날에 나는 실망한 채로 귀가하지만 그렇다고 불행해하지는 않는다. 기회는 또 오기 마련이니까 “신문에 났더라. 글래스고의 어떤 나이 든 여자가 집 안에서 죽은 채로 8년간이나 방치돼 있었대. 찾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 봐. 그래서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고. 가스랑 전기는 끊겼어. 창문은..

한밤의 도서관 2020.04.08

라이프 오어 데스

“자네 이름이 뭔가, 젊은이?” “모스 제러마이어 웹스터인데요.” “이름이 모스가 뭐야?” “그게요, 소장님, 엄마가 제 출생증명서에 모세를 잘못 쓰셔 가지고요.” 자라다 만 나무들의 행렬 위로 붉게 빛나는 태양이 떠오른다. 네 시간 후, 물의 기억은 까마득하고 하늘에서는 불타는 원이 용접공의 불꽃처럼 뒷목을 달구고 있다. 길 위에는 피부의 모든 주름과 패인 곳에 먼지를 뒤집어쓴 오디 혼자뿐이다. 면회시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여자들이 몇 명 있다. 남자들을, 또는 범죄자들을 잘못 고른 여자들이다. 잡힌 자들. 패자들. 서툰 자들. 사기꾼들. 데지레는 회상에 잠긴다. 데지레는 이미 좋은 남자를 찾는 건 쉽지 않다고, 제일 좋은 남자는 보통 게이 아니면 유부남이거나 허구의 인물이라고 결론을 내려버렸다. 2..

한밤의 도서관 2020.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