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42

나는 내가 우울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우울도 타인의 우울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기예보는 미래의 기분을 예상하는 것과 같았다. 날이 흐리면 분명히 기분이 나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때문에 날이 흐릴 거라는 예보가 있으면 약속을 취소해버렸다. 심지어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를 갑작스레 취소해버린 적도 있다. 종이마음을 가진 나는 날씨에 지레 겁먹고 일정을 바꾸는 일이 허다했다. 날씨가 나인지, 내가 날씨인지 모를 만큼 딱 붙어 있었다. 우스운 것은 해가 난다고 해서 마음이 밝고 즐거워지지는 않았다. 그저 마음을 약간 햇살에 말리는 정도였다. 아주 우울하거나 조금 덜 우울한 정도였지만, 언젠가는 햇살에 바짝 말라 보송할 수 있기를 바란다. ..

한밤의 도서관 2021.05.20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그런데 이런 시기에 동창회를 해도 괜찮겠어? 코로나 때문에 다시 떠들썩하던데.” 아, 그거. 모모코는 평소답지 않게 살짝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책을 생각해 두긴 했어. 탁 트인 오픈 스페이스가 있는 곳을 찾아뒀거든. 상황이 나빠지면 그쪽으로 옮기든지, 아니면 간격을 띄어서 앉든지.” “그러면 되겠네” 감염 재확산이 빈번하게 일어나니 다들 대응 방식에도 익숙해진 것이다. “그런데 난 도쿄에서 못 나갈지도 모르겠어.”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은 자제하라고 했지.” “응, 괜히 이 시점에 고향 내려갔다가 돌이라도 맞으면 어떡해.” “남의 신분증을 봤으면, 그쪽도 보여 줘야 공평한 거 아닌가?” 다케시는 수첩을 펼쳤다. “흐음, 고구레 경감이라. 마요, 아쉽게 됐구나. 메그레 경감이었다면 좀 든든했을텐데..

한밤의 도서관 2021.05.18

청부 살인, 하고 있습니다.

“청부살인업자는 상상해선 안 돼. 표적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지. 혹은 이 사람이 죽으면 곤란한 사람이 있겠지 같은 걸 상상해선 안 된다고. 반대로 표적이 아무리 못된 인간이라도 이런 녀석은 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선 안 돼. 상상은 감정이입과 이어지지. 인간은 감정이 들어간 상대에게는 냉정해질 수 없어. 즉 줄일 수 없다는 말이지.” - 검은 물통의 여자 “너 말이야, 청부살인업자가 왜 존재한다고 생각해?” “왜 존재하느냐고?” “사람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이야.”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사람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쉽게 빼앗을 수 없어. 그렇기 때문에 청부살인업자라는 존재가 필요한 거지. 쉽게 빼앗을 수 없는 생명을 대신 빼앗아주는 전문직의 존재 의의 말이야. 하지만 테러 사건이 빈발한다면 어떨..

한밤의 도서관 2021.04.30

40세, 미혼출산

나는 스무 살 때, 마흔 전후의 여자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십대 여자와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초등학생이 보더라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동물적 직감은 소박하고 단순하다. 그것이 본래의 정직한 피부감각이다. 마흔 살 전후의 여자가 그때까지 사랑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옛날의 나는 어떻게 느꼈을까. 닭살이 돋았을 것이다. 시골 노인들의 생각에는 격세지감이 있어서 불쾌감이 드는 일이 많았다. 낡은 생각을 가진 인간들과는 정면으로 부딪쳐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 나이가 되도록 뼈저리게 느껴왔다. 그래서 반박하지 않는다. 아아, 이 눈빛이다. 고향의 술집에서 만났을 때도 느꼈지만 그때보다 더욱 중년 남자의 변태도가 증가했다. ‘중년 남자의 변태도’라는 말은 동기인 나미가 이십 ..

한밤의 도서관 2021.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