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은 인성의 반영이다.
살인범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고 또 절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 부하와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해당 살인범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되풀이 했다.
* 인적자원 스카우터를 헤드헌터라고 하듯 범죄자의 심리 상태를 이용, 검거를 지원하는 수사관을 마인트 헌터라 부름.
여러 해 뒤 우리는 범죄자의 인성을 좀 더 깊이 연구한 끝에 범죄자의 이런 요구를 들어주면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나기를 요구하는 사람은 분명 자신을 나쁜 길로 인도한 원흉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인물을 범인과 대질시키는 것은 또 다른 살인을 유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연쇄 살인범 대부분이 사냥과 살인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이 두 가지가 ‘본업’이기 때문에 늘 그 문제만을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스트레스 요인이 무수하게 많다. 심지어 날씨가 너무 좋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가장 흔하고 또 강도가 높은 스트레스 요인 두 가지는 직업을 잃는 것과 아내(혹은 애인)을 잃는 것이다(나는 여기서 또다시 여성을 스트레스 요인으로 내세웠다. 뒤에 밝혀지겠지만 그것은 거의 모든 연쇄 살인범이 남자이기 때문이다.)
흉악범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여행길은 끊임없는 경탄과 통찰이 뒤따르는 발견의 길이다. 연쇄 살인범을 정의하자면 ‘성공적인’ 살인범이라 할 수 있다. 범죄를 해나가면서 그 경험에서 자꾸만 배워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수사관들은 그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사태의 본질을 이렇게 파악한다. 프로파일링과 범죄 현장 분석은 자료를 집어넣어 데이터를 입력하는 과정보다 훨씬 복잡하다.
훌륭한 프로파일러가 되려면 폭넓은 증거와 자료를 섭렵하고 평가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는 창의적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수사관은 맡은 역할을 준비하는 배우와도 같다. 배우는 대본에 쓰인 대사를 본다. 그러나 무대에 올라가면 대사보다는 그 대사 밑의 ‘서브텍스트’, 즉 그 대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분위기를 연기하려고 노력한다.
한가지 유념해야 할 중요한 사항은 정신이상이 의학적인 정신분석 용어가 아니라, 법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신이상은 그 범죄자가 ‘아픈가’ 혹은 ‘아프지 않은가’를 뜻하는 게 아니다. 법에서 말하는 정신이상은 그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를 책임질 수 있는가 혹은 없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체이스는 정신병원에 들어간 다음에도 토끼를 잡아 피를 뽑은 후 자기 팔뚝의 혈관에 주입했다. 또 작은 새를 잡아서 이빨로 대가리를 뜯어낸 후 새의 피를 마셨다. 체이스는 어느 모로 보나 정신병자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수사망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10명의 여자를 죽이 살인범은 정신병자가 아니다. 수사망을 그처럼 피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두뇌가 조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정신병자(혹은 정신이상자)와 정신병질자를 엄격히 구분해야하고, 이 두 가지를 서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프로파일링 업무에 종사하다보면 자기의 의견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늘 안고 살아야 한다. 그 위험은 엉터리라는 질책을 감수해야 하는 개인적 측면보다는 틀린 의견으로 또 다른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는 것을 미리 예방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더 크다.
지난 25년 동안 흉악범들을 연구, 조사하면서 내가 느낀 것이 있다면 좋은 성장 환경, 우애 깊고 서로 돕는 가정,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이 흉악범이 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흉악범은 그들의 범죄, 그들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고 또 죗값을 치러야 마땅하다. 범죄자가 14, 15세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죄의 심각성을 잘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