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무한화서 2002-2015

uragawa 2018. 2. 2. 12:39

언어

42
입말에 가깝게 쓰세요. 그래야 자연스럽고 리듬과 어조가 살아나요. 첫 구절만 봐도 머리로 썼는지, 입으로 썼는지 알 수 있어요. 입술로 중얼거리고 혀로 더듬거려보세요. 내용은 하나도 안 중요해요. 아니, 그렇게 해야 내용도 살아나게 돼요.



대상

111
내 얘기만 하려 하면 과장이 되고, 말에 힘이 붙지 않아요. 다른 사람 얘기를 잘하면 그 안에 내 얘기가 다 들어있어요. 시는 남 얘기를 통해 자기 얘기 하는 거예요.



126
특이한 것들은 내가 더 보탤 게 없어요. 항상 평범한 것들을 비범한 쪽으로 가져가세요. 누구나 평범하게 태어나고 죽어요. 그것 말고 특이한 게 뭐 있겠어요.



178
한달음에 쓰세요. 생각이 들어가면 시간과 장소가 흩어지고, 사건의 흐름이 깨져요. 생각은 평소에 하고, 글 쓸때는 아예 하지 마세요. 하지만 우리는 늘 반대로 하지요.



182
부수적인 것들을 주렁주렁 엮어 이야기 하면 백 프로 실패예요. 그냥 지나가는 말 하듯이, 인상 쓰지 말고 한 가지만 얘기하세요. 그래야 리듬과 이미지가 살아나요.



195
글쓰기는 우리가 지금 있는 방에서, 좀더 인간적인 방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져요. 물그릇 속 젓가락이 휘어져 보이는 것처럼 밀이에요.





202
글을 쓰나 안 쓰나 우리는 망하게 되어 있어요. 글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서 위로 받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는 것 뿐이에요.



265
문학은 무언가 만들어서 얻게 되는 게 아니고, 버려서 얻어지는 거예요.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 버린 다음이 문학이에요. ‘얻으려 하면 잃을 것이고, 잃으려 하면 얻을 것이다’라는 말은 문학에도 해당 돼요.



282
시는 대단한 게 아니에요. 그냥 식당에서 나올 때 뒷사람 구두를 돌려놓아 주는 거예요. 시는 미운 데서 예쁜 데로 조금 옮기는 거예요. 그것도 아니라면, 긴 꿈에서 잠깐 깼다가 다시 잠드는 거예요.



시작

352
자기 속에 아픔이 있어야, 리듬도 살고 어조도 살아요. 자기한테 뼈아픈 얘기는 누구한테나 뼈아픈 얘기가 돼요. 그런 시는 오랜 세월이 가도 이끼가 끼지 않아요.



359
모과는 계속 닦아줘야 썩지 않는대요. 글쓰기도 매일매일 자기를 닦는 거예요. 나날의 글쓰기는 흐르는 물에 글씨 쓰는 것과 같아요. 기도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의 효력은 글쓰기 하는 순간에만 있어요.



362
대화는 남의 기분을 살피고 남의 뜻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위선이 많아요. 그러나 혼잣말은 늘 진실해요. 혼잣말하면서 거짓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시는 자기한테 하는 말이에요. 진실한 말은 항상 목소리가 낮아요.





397
어젯밤 방 안에 들어온 벌레를 살려주려고, 쓰레받기에 쓸어 담고 창을 열어 던져주었어요. 그 틈에 나방 한 마리가 들어와 휘젓고 다니기에, 빗자루로 때려잡아 바깥에 내버렸어요. 지금까지 제가 한 좋은 일은 늘 그런 식이었어요.



419
자기 위주로 생각하면 ‘또라이’고, 남 위주로 생각하면 ‘속물’이에요. 속물의 특성은 자기가 속물인지 모른다는 거예요. 남 보고 속물이라는 사람은 속물일 가능성이 많지만, 자신이 속물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속물이 아닐 가능성이 많아요. ‘또라이’도 마찬 가지예요.



425
이유 없이 상대가 함부로 대하더라도 속상해하지 마세요. 그 대신 나에게 잘못이 없으면 그 사람 문제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수신하지 않은 편지는 발신자에게 돌아간다 하잖아요.



426
어떤 사람의 나쁜 점을 보면 좋은 점이 안 보여요. 하지만 좋은 점을 보면 나쁜 점도 같이 보여요. 작은 것을 보면 그 뒤의 큰 것이 안 보여요. 하지만 큰 것을 보면 그 안의 작은 것도 같이 보여요. 모든 게 선택의 문제예요. 우리가 사는 삶은 우리 자신의 선택의 결과예요.



440
앎이란 모르는 상태를 견딜 수 있는 능력이에요. 모르는 걸 피하려 하지 마세요.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게 더 나쁜 거예요. 모르면 알 때까지 기다릴 수 있잖아요. 기다림은 힘들어도 좋은 거예요.



468
우리는 망망대해의 물거품 하나에도 못 미쳐요. 문학이란 건 허망한 존재가 자기 허망함을 알고 딴짓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에요. 비참하게 깨져도 한심하게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것. 모든 것이 허망하다 해도, 허망하지 않은 게 꼭 하나 있어요. 일체가 허망하다고 말하는 이것! 이 공부를 오래 해야 독하게 벼려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