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교수형은 기관이 아니라 경동맥을 조이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는 않다고 한다. 고통을 맛보기도 전에 뇌로 가는 피가 멈추어 실신하게 된다. 물론 실제로도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먼저 뇌사 상태에 빠져 뇌의 기능이 정지하고, 따라서 심폐기능도 멈춰 이윽고 완전히 죽는다. 이때 근육이 이완되어 똥오줌을 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또한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어머니는 이제 성장하지 않는다. 앞으로 더 나빠지기나 하지 좋아질 일은 없으리라. 날이 갈수록 더욱 의사소통이 힘들어진다.
요코는 지금까지 막연히 일본이 오래 사는 나라라는 게 좋은 거라고 여겼는데 그건 큰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니, 이렇게 절망적일 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너무도 미웠다.
“소개한 내가 이런 거 묻기는 좀 우습지만, 어때? 괜찮겠어? 너희 아버님이 거기 들어오시면 네가 상속받을 재산이 꽤 줄어들잖아?”
유백색 오리 살을 집으며 사쿠마가 화제를 바꾸었다.
포레스트 가든 입주비는 3억 엔 가까이 된다. 입주하면 아버지가 가진 유가증권과 부동산 대부분을 처분해야 한다.
“가족 개호야말로 일본에 내린 저주야. 나는 자택에서 가족을 간병하거나 수발을 들다가 노이로제에 걸린 며느리와 딸을 아주 많이 알아. 네 앞에서 이런 이야기 하기 뭐하지만 살인이나 동반자살로 발전하는 케이스도 드물지 않지.”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을 위해 개호보험이 생긴 거잖아?”
오토모가 물었다. 6년 전인 2000년에 일본은 개호보험제도가 실시되었다.
사쿠마는 코웃음을 쳤다.
“안타깝게도 개호보험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보험이 아니야. 개호보험을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었지. 살 사람과 살지 못할 사람.”
개호보험을 이용하면 비용의 10퍼센트만 부담하고 개호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 그런데 실제로는 건강보험처럼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한계가 정해져 있어서 본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다 받을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어.
결국 제대로 된 개호를 받기 위해서는 개호보험의 범위 밖에 있는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지. 그런 서비스는 이용자가 실비를 모두 부담해야 해. 실제로 유료 실버타운 대부분은 실비 부담 서비스를 하지. 그래야 섬세하고 질 좋은 개호 서비스가 가능하니까.
“요즘 격차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격차는 노인 격차야. 특히 보살핌이 필요한 상태에 있는 노인의 격차는 냉혹하지. 안전지대인 고급 실버타운에서 극진한 서비스를 받으며 생활하는 노인이 있는 한편 너무 무거운 개호 부담을 가족에게 주는 노인도 있어.”
한 사람에게 딱 한 번 뿐인 ‘죽음’이라는 특별한 이벤트도 많은 사람이 사는 도시에서는 흔해빠진 일상이었다. 요코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슈퍼마켓에서 반찬을 무게 달아 팔듯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효율적으로 처리되었다.
급여는 싸고, 근무시간은 길고, 노동은 고되다.
마리코처럼 오래전부터 이 분야에 종사한 사람들 말에 따르면 ‘일하는 환경은 예전이 훨씬 나았다’고 한다. 개호보험제도가 시행되어 시장원리가 도입되면서 업무량은 늘고 급여는 줄었다는 이야기다.
포레스트를 비롯한 개호기업은 보수가 줄어든 만큼 인건비나 사무 경비를 줄이고 효율화하여 이익을 확보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이익이 나면 다음 개정 때 또 그만큼 보수가 깎였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현장에서 일하는 도우미에 대한 처우는 게속 나빠지기만 했다. 경영도 마찬가지로 악화 일로를 걸었다.
과정보다 결과를 따지는 현실 사회는 사쿠마에게 아주 마음 편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자기가 들어간 회사가 생각보다 천장이 낮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보다 무능한 상사가 위에 여러 명 똬리를 틀고 앉아 훨씬 많은 월급을 받고 있었다. 힘겹게 경쟁하고 있는 것은 젊은 사원들뿐이고 나이 든 사원들은 안일한 생활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이사 이상의 임원은 모두가 이런저런 형태로 창업자 가족과 친인척 관계였다.
정체 상태에 빠진 경제 상황을 배경으로 직장이 필요한 노동자와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의 교량 역할을 해서 이익을 남긴다. 그곳은 상대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돈을 벌 수 있는 노골적인 세계였다.
마치 인신매매 비슷한 구석이 있는 파견 업계의 실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나중에 포레스트의 오너가 되는 회장은 ‘인재 파견업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비즈니스다’라고 했다.
양심이니 모럴이니 하는 기존의 범주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이윤을 추구한다. 불리한 점은 숨기고 유리한 면은 부풀린다. 달콤한 즙을 빨아먹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끝까지 빤다. 짜낼 게 있으면 짜낼 만큼 짜낸다. 그렇게 해서 이익을 극대화 하는 것이 이 세계의 정의다. 결과적으로 이기적인 자세야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열쇠 머리에는 그 열쇠를 만든 메이커 이름이 새겨진다. 열쇠 제조 회사에는 정품을 만드는 메이커와 복사용 열쇠를 만드는 카피 메이커가 따로 있다. 즉 열쇠 머리에 새겨진 각인을 보면 그 열쇠가 오리지널인지 카피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사람은 득실 문제보다 네거티브한 감정에 더 좌우된다. 특히 수치심이나 불안은 사람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텔레비전 화면에 흰 건물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비쳤다. 지진이 났던 그날 가시와자키 가리와 원자력발전소의 모습이다. 지진의 영향으로 화재가 있었다고 한다. 또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나온 핵연료를 보관하는 풀이 넘쳐 미량의 방사능 물질이 포함한 물이 누출되었다고 전했다.
게스트로 출연한 전문가가 <누출된 방사능은 매우 적어 인근 주민의 건강에 피해를 줄 염려는 없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것은 안전상 중요하지 않은 옥외 변압기 쪽 입니다><운전 중인 원자로는 여유롭게 자동 정지, 붕괴열도 여유롭게 제거되었습니다> 등등 발전소의 안전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절대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을까? 이렇게 단언하는 사람들은 각오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틀림없이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깨진 창 이론’은 치안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론이다. 작은 위반이라고 대충 넘어가면 중대한 범죄를 초래하며 거꾸로 경미한 위반도 봐주지 않고 단속하면 범죄 발생을 억제하게 된다. ‘건물 창이 한 장 깨졌는데 방치하면 나중에 모든 창이 깨진다’라고 하는 비유에서 따와 그 이름을 붙였다.
개호와 양립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죠. 긴 시간 집을 비울 수 없는 노릇이라 풀타임 근무는 애초에 불가능했습니다. 시간을 요령껏 내서 집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걸로 생활을 꾸리기에는 수입이 너무 적었죠. 어느새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돈도 바닥이 나 생활하기 곤란해졌습니다.
결국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죠. 끼니를 굶는다는 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어디에 있는 먼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우스울 정도로 쉽게 저 자신이 그런 신세가 되고 만 겁니다.
저는 한참 망설인 끝에 생활보호를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생활보호를 받는다는 건 인간 실격이란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아 망설였었죠. 뭐 결과적으로는 공연한 걱정이었지만요. 생활보호를 받지 못했으니까요. 도저히 더는 굶을 수 없다고 생각해 고민 끝에 신청했는데.
복지 사무소 창구에서 ‘일을 하시죠? 힘드시겠지만 더 노력하세요’라는 격려만 받았을 뿐입니다 . 하지만 제가 더 뭘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죠. 이 사회에는 구멍이 나 있다는 사실을.
요코 뿐만 아니라 대지진을 계기로, 결혼을 선택하는 커플이 늘었다고 한다 ‘기즈나콘*’이라고 하는 단어가 자주 귀에 들어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생겨난 말 ‘인연을 소중히 여긴 결혼’을 뜻한다.
고독사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끊이지 않았다. 자살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건강 불안을 안고 있는 중년, 노년층이라고 한다. 국민연금 미납자가 40퍼센트에 이르렀다. 사회보장 · 인구문제연구소는 40년 뒤에 일본은 현역 세대 한 명이 고령자 한 명을 책임져야 하는 ‘목말 사회’에 돌입할 거라는 예측을 발표했다. 후생노동성의 추계에 따르면 개호가 필요한 인지증 고령자 수는 내년에도 3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한편 개호 업계의 이직률은 여전히 높아, 인력 부족은 매년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구멍이 메워지기는커녕 서서히 그 입구를 넓히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