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산 저장량이 부족한 정자도 선천성 기형을 일으킬 위험이 높다. 엽산은 수용성비타민의 일종으로 DNA 합성과 세포분열 등에 관여하는데, 가임기 여성이 엽산을 먹지 않으면 태아 척추 이분증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임기 남성이 엽산을 먹지 않아도 문제가 발생한다.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엽산을 먹지 않은 수컷의 2세가 엽산을 많이 먹은 수컷의 2세에 비해 선천성 결손 발생 비율이 30%가량 높게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 엽산을 많이 먹은 남성들(섭취량 상위 25%)은 정자 염색체 수가 비정상일 위험이 대조군보다 20~30% 낮았다.
이론적으로 마지막 생리 시작일을 임신 0주차 0일로 본다. 흔히 열 달간 아이를 품는다고들 하지만, 인간의 임신 기간은 열 달이 채 안되는 40주(280일)다. 즉 40주차 0일이 예정일이 된다.
이론적으로 배란은 마지막 생리 시작일로부터 14일째에 일어나는데, 이보다 늦거나 빠른 사람도 있다. 소변에서 검출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비율변화를 측정한 한 연구에서는 217명의 피험자, 418회의 생리주기를 대상으로 삼았다. 황체기(배란 후 남아 있는 여포가 황체로 변하는 시기) 범위는 7~19일로 다양했고 10% 여성만 14일째에 배란했다.
게다가 임신 진단을 받으러 온 여성들은 마지막 생리 시작일을 5, 10, 15, 20, 25 등으로 대답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15일로 응답한 여성이 많았다. 이는 여성들이 마지막 생리 시작일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이때 날짜를 반올림해서 응답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생리 시작일을 기준으로 분만 예정일을 추정하는 게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는 배고픈 상태로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다가 혼이 났다. 속이 메슥거리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아 ‘이러다 쓰러지겠다’는 공포감이 몰려오는 찰나,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사람이 자리를 양보해줘 다행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지 몇 분 안 되어 호흡이 진정됐는데, 서글프게도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자리를 양보해준 사람이 내가 꾀병 부린 거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였다. 그러고도 꽤 여러 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지하철 계단에서 주저앉곤 했다. ‘교통 약자’가 되고 보니 지하철은 무시무시한 공간이었다.
수진 씨는 결국 임신 16주차에 휴직에 들어갔다. 지옥같은 입덧은 20주차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공무원이라 그나마 산전 휴직을 쓸 수 있었어요. 차라리 일찍 휴직하는 게 피해를 덜 주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단축근무제도는 눈치가 보여서 쓰지 못했고요. 일반 회사였다면 아마 퇴사했겠죠.”
“초산이시죠? 첫째딸은 살림 밑천이래요.”
16주차 정기검진 때 의사는 태아성별을 은근슬쩍 알려준답시고 이렇게 말했다. 학업은 포기한 채 농사일과 공장일 하며 생활비며 큰오빠 학비를 대고, 나이 먹어서는 부모 봉양에 허리가 흰 수많은 장녀(와 큰며느리들). 아직도 이런 성차별적인 표현을 쓰는 사람이 있다니, 곧 태어난 딸을 상상하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가도 의사의 말을 곱씹을수록 화가 났다.
우리 사회는 ‘정상’과 ‘평균’에 대한 강박이 크다. 누군가가 거기에서 조금만 벗어나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타박하고, 모두 주변인의 기대(?)에 부합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임산부도 그 레이더망을 피해갈 수 없어서, 주수 놀이가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파생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 크기와 외모를 지적당하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마음은, 내가 내 일을 사랑하고 열정을 다하는 프로처럼 보이지 않을 거란 두려움이었다. 나는 늘 내 일을 성실히 최선을 다해 잘 해내는 사람으로 비쳐지길 바랐다. 그러나 임신을 하자 다양한 내 정체성은 모두 지워지고 임산부라는 이름 하나만 남는 듯했다. 취재원에게 ‘내가 나이는 어리지만 당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프로다’라는 신뢰감을 주는 게 내겐 무척 중요한 일이었는데, 행여 부른 배 때문에 뒤뚱거리는 게 우스워 보이면 어쩌나 걱정됐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저 여자는 왜 붐비는 시간에 지하철을 타서 민폐를 끼치나’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괜한 자격지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과연 이게 내 안에서 비롯된 피해의식이었을까?
1780년 파리 치안 감독관의 통계에 따르면 파리시에서 매년 태어나는 아기의 5% 미만이 모유를 먹고 자랐다고 한다. 18세기 말까지도 아기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했는데, 19세기 들어 노동력이 중요해지자 국가가 여성들에게 모성애를 강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모성애를 핑계 삼아 태아만을 중심에 놓고 엄마의 삶을 희생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은 부당하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개념이 있다. 모든 제품이나 건축물을 사용자의 연령, 능력, 성별, 장애, 언어에 관계없이 최대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개념이다.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탈 수 있는 저상버스, 휠체어가 건물 안에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경사로, 선반 안으로 머리와 팔을 구겨 넣지 않아도 쉽게 물건을 꺼낼 수 있는 바퀴 달린 선반 등이 그 예다. 임산부, 장애인, 노인, 비만인,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한 표준 체중의 성인에게도 훨씬 편하다. 처음 이 개념을 접한 스물여섯 살 때는 ‘이런 것도 하면 좋지’라고 다소 시혜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임산부가 되고 보니 당사자에겐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임신 첫 3개월(이후 자궁이 서서히 위로 올라간다)과 마지막 3개월 중에는 자궁이 커지면서 방광을 누른다. 또 태아 머리가 음부 신경을 압박하기도 한다. 분만할 때는 골반 아래의 근막, 인대, 신경, 근육 등이 손상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들로 요실금이 발생할 수 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요실금은 일시적인 증상이라 분만 후 1년 이내에 대부분 없어지지만, 이 기간에 요실금을 겪은 사람은 중년에 요실금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현재 기혼 상태가 아닌 경우 기혼 상태보다 우울증 위험도가 2.1배 높았다. 가계소득이 300만 원 미만이면 500만 원 이상인 경우보다 우울증 위험도가 2.0배 높았다. 우울증을 경험했던 경우는 위험도가 5.3배, 가족 중 우울증 환자가 있는 경우는 2.0배였다. 당뇨 병력이 있을 경우는 우울증 위험도가 4.3배였다. 심한 입덧이 있는 경우는 1.6배, 임신 20주 이전 질출혈을 뜻하는 절박유산 경험이 있었던 경우는 1.6배였다. 구구절절 공감되는 이유들이다.
흥미롭게도 배우자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 우울증 위험도가 3.8배로 우울증 병력, 당뇨 병력 다음으로 높았다. 이 연구 결과를 보면서 “산후우울증은 시작도 끝도 남편”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의료진과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건 한국의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저출생, 저평가된 분만 수가 등의 이유로 문을 다는 분만 병원이 늘고 있다. 살아남은 병원에 산모들이 몰린다. 게다가 주말에 몰린다. 근로기준법에 ‘태아검진 휴가 제도’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터는 많지 않다.
그나마 남성에겐 이런 제도조차 없다. 임신은 여성 혼자하는 게 아니고 그래서 많은 부부가 아기집을 볼 때부터 출산까지 함께 하기를 원한다. 그러니 결론은 토요일, 그야말로 산부인과 병원이 미어터진다. 예약을 했음에도 2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 의사는 책상이 있는 상담실을 중심으로 양쪽 진료실을 왔다 갔다 한다. 왼쪽 진료실을 이용하는 동안 오른쪽 진료실엔 다음 산모가 옷을 갈아입고 대기한다. 의료진뿐만 아니라 산모도 쫓긴다.
출산은 종결도 중간 과정도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지워지는 일의 시작점이라는 걸, 아이러니하게도 경험을 쓰는 게 아니라 쓰지 못하는 것으로 말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