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uragawa 2019. 10. 8. 22:00

국내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8만 여명이 사망하는데, 실제로 타살은 500여 명 정도, 즉 10만 명당 1명이 안 된다.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만 명당 0.8명이며, 흔히 10만 명당 2명 정도로 나오는 통계는 살인미수까지 포함된 경우다. 반면에 자살은 10만 명당 24명이 넘는다. 타살의 30배의 달하는 수치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의학자 수는 정확히 40명이다. 부산에 있는 세 명을 제외하고, 전부 전국에 흩어져 있다. 1년에 두 번씩 개최하는 학회에 참석할 때도 법의학자들은 절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혹시 같은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가 만약 사고라도 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하서다. 혹시 사고가 발생해 한꺼번에 죽는 일이 발생하기라도 하면 우리나라 법의학자가 전멸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농담이 포함된 진담이다.



사람이 사망하거나 가사 상태에 빠지게 되면 근육이 이완되면서 축 늘어진다. 몸속 근육도 마찬가지다. 사망하게 되면 항문을 조이던 근육이 이완되면서 변이 나오게 되고, 남성의 경우에는 정액이 나오는 수도 있다. 식도와 위 사이를 조이던 근육도 마찬가지다. 살아 있을 때에는 잘 유지되어 역류를 막다가 사망하면서 풀린다.
따라서 사망자나 가사자의 가슴을 누르는 심폐소생술의 과정에서 그리고 심지어 구급대가 옮기는 과정애서, 위에 남아 있던 음식물이 식도로 넘어와 입 안에서 보일 때도 있다. 일부에서는 과음한 사람들이 구토 도중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오는 바람에 사망한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술의 의한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 후 음식물이 식도로 넘어와 입 안에서 음식물이 관찰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의 교수진들은 체액만으로 연령을 추정하거나, 타고난 머리카락이나 눈동자의 색이 무엇인지를 감별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체액만으로 인종을 구별하는 연구는 이미 알려져 있지만 이에 더해 유전자 특성을 통해 한국인인지, 일본인 또는 중국인인지 등의 국적 감별 가능 여부에 관해서도 연구하는 것이다.



최근 법의학에서 실시되는 가장 업데이트된 검사는 사망 후의 CT나 MRI검사다. CT나 MRI는 보통 질병의 진단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실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부검을 실시하기 전 진단을 위해 촬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사후 CT 기계가 서울 국과수에 단 한 대만이 존재하나, 미국, 일본, 독일 및 호주 등의 선진국에는 각 대학마다 또는 각 연구소마다 구비되어 있어 활발한 검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모두의 생명은 사실상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난 것 자체가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들은 엄청난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 태어난 생명이며, 그렇기에 굉장히 신비로운 존재다.



현대사회에서는 과학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죽음이 의학의 대상이 되었다. 의사라는 새로운 사제에 의해 마지막 순간이 결정되는 과학의 시대가 온 것이다.



사망 판정을 받은 후 동사무소나 지방자치단체에 가서 사망 진단서나 시체 검안서를 내면 사망자의 모든 권리와 의무는 사라지게 되고 사망자로 확정받게 된다. 그리고 이 사망 진단서나 시체 검안서는 대법원과 통계청으로 간다. 대법원에서는 가족 관계를 정리하게 되고 통계청에서는 사망 원인을 조사함으로써 사회적 장치를 만드는 기초 자료로 쓴다. 즉 만약 통계청에서 수집한 사람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암인 경우에는 정부가 암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국가 예산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법의학이 결정한 사망 종류는 나중에 다른 정보가 있으면 바뀔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사망 종류는 법률이 할 일이지만 주어진 정보로 최선의 법의학적 의견을 제시하는 일이 중요하다. 법의학적 판단은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고, 행정적으로 사망 원인 통계에 쓰인다.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의료 행위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처분당하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 죽음의 대세가 아닌가 싶어 씁쓸한 심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대세를 거슬러 우리는 죽음을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쪽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미국의 병리학자 잭 케보키언Jack Kevorkian은 죽음의 기계, 즉 자살 기계를 뜻하는 타나트론Thanatron을 고안해낸다. 기계 한쪽으로는 링거 바늘을 통해 생리 식염수가 들어가고, 한쪽으로는 잠이 잘 오는 수면제와 함께 독약이 들어간다.
케보키언은 말기 환자 중에서 죽음을 선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정확히 진단한 후 그의 상태가 정말 치료 불가능하고 죽음에의 의지가 확실한 경우를 판별해 자신이 고안한 이 자살 기계를 그 사람에게 설치해 주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안락사’라는 글자를 그대로 보면 편안하고 고통 없는 죽음을 뜻한다. 가치중립적인 단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회적인 어감은 그리 좋지 않다. 안락사 하면 마치 누군가가 나를 살해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오히려 안락사의 또 다른 표현인 ‘자비사’가 우리가 생각하는 안락사일 수 있다. 자비사라고 하면 고통 없이 사망하게 도와주는 것, 예를 들어 전쟁 영화에서 총상으로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병사를 편히 죽도록 쏴주는 그런 것이다.



실제 내가 법의학자로서 느끼는 자살자 수는 실제 발표된 수치보다도 훨씬 더 많다. 날이 따뜻해지는 3월이나 4월쯤이 되면 한강에서 시신이 많이 발견되는데, 나는 그중 대부분을 부검하게 된다. 그래서 수치적으로 느끼는 감이 실제 발표되는 것보다 많다.
자살자는 그 시신이 발견되어도 통계청에서 자살 처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명백하게 유서 같은 것들이 있지 않는 경우에는 기타 및 불상으로 분류된다.



미국의 지역별 자살률을 비교해보자. 어느 지역의 자살률이 제일 높을까? 아마도 뉴욕을 떠올리며 비인간적인 도시에서 자살자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겠지만 아니다. 정답은 알래스카다. 와이오밍 주라든지 말을 타고 하루 종일 가야 하는 외진 곳의 자살률이 높다. 반면 가장 자살률이 낮은 도시는 워싱턴 주와 뉴욕 주다.
우리나라도 똑같다. 전국 8도 중에 자살률이 가장 높은 도시는 강원도이고 그다음이 충청북도다. 반면 서울의 자살률은 가장 낮다, 타살률은 정반대로 도시가 높고 지방이 낮다.



우리나라 자살의 세 번째 특징인 가족 동반 자살은 이제 용어를 조금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족이 함께 죽었다고 해서 모두가 그 죽음에 동의한 것이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이 죽을 때 혼자 죽지 않고 가족을 살해하고 죽는다든지 부부가 아이와 함께 죽는 일이 심심치 않게 기사거리로 올라오는데, 이것은 외국에서는 굉장히 드믄 경우로 아이나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특이한 우리 정서를 반영하는 자살이다.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 자살 사고는 단계적으로 일어나는 일로, 우선 자살을 오래도록 계획한 후에 자살 시도를 하게 되기에 중간에 누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관심 그리고 사회적 안정망까지 잠재적 자살자에 대한 우리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은 전 세계적으로 비교해봐도 대만이나 일본을 제외한다면 비할 데 없이 매우 우수한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모르핀 사용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예산을 삭감한다. 그래서 의사들이 처방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환자가 통증이 심할 경우 이를 처방해서 통증을 없애야 정상적이 생활을 하고 마지막까지 본인의 여러 가지 일들, 자식들에게 남기는 당부의 말이라든지 삶의 정리라는 것을 할 수 있는데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임종 환자의 33.6퍼센트가 응급실을 사용한다. 이것은 모르핀 사용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통증 억제가 안 되니 무려 3분의 1에 해당하는 환자들이 임종 1개월 전에 응급실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불편한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돌봐줄 사람도 없고 나 혼자 사망하는 경우라면 병원 윤리위원회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된다. 



다들 자신의 죽음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 내일 오든 몇 십 년 후에 오든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러한 물질적 · 심리적 정리는 삶의 정리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책임, 권리, 의무에 대한 여러 가지 귀속을 마쳐야 편안히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사실상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우리 몸을 스캔해서 병을 잡아내는 스캔 기계가 조만간 혁신적으로 바뀔 텐데 그러면 우리 몸에서 조기에 일어나는 돌연변이까지 쉽게 잡아내서 유전자 가위로 자르고 고치는 시기가 곧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차츰 장기 교체도 일상다반사가 될 것이고 이내 나노 단위의 로봇인 나노봇이 우리 몸을 휘젓고 들어가서 치료하다가 종래에는 아예 영생의 시대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임종 노트에는 현실적인 내용과 함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길 이야기가 포함되는 것이 좋다. 우선 자신의 장례에 대한 내용, 즉 원하는 장례 방식이 있다면 이를 기록한다.

현실적으로 사망 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유산이다. 돈과 물품이 어디에 있는지, 통장이 있다면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등과 함께 재산의 분배에 대한 사항을 자세하게 기록해야 한다. 이때 법적 효력을 가지는 유서의 형식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임종 노트에 포함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남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자신의 이야기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전하고 싶거나, 남은 가족들에게 인생에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면 그것을 자세히 기록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나를 기억해 주고 나의 인생을 이해해 줄 수 있다.



죽음의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늘 죽음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유한한 삶에 감사하며, 자신과 주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지막 죽음의 과정에서 선택할 여유를 갖게 된다. 이러한 죽음이 곧 품위 있는 죽음이 아닐까.
우리 모두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두려워 하지 말고 오히려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하며, 지금 사유하고 있는 나의 삶에 감사하며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