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언제나 여행 중

uragawa 2019. 10. 29. 19:41

개성을 만드는 요소란 자란 환경이나 경험이나 유전뿐 아니라 그 시대, 그 장소의 공기이기도 하다. 국경을 지나기 전의 하늘은 분명 핀란드 직원의 미소 띤 얼굴을 닮은 흐린 하늘이었는데, 국경을 지난 뒤의 하늘은 여지없이 러시아 직원처럼 거만하게 흐린 하늘이었다.
- 아무래도 모르겠는, 그런 도시___러시아



나고 자란 나라에서 변화를 느끼기는 정말 어렵다. 물론 컴퓨터 보급이나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소통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 등은 체감할 수 있지만, 그건 변화가 아니라 단지 신제품이 등장한 것뿐이다. 1970년대 이후로는 어떤 세계관 같은 것이 크게 변하는, 온몸이 뒤흔들리는 일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연히 여행하다가 반해버린 곳에서 생생한 변화를 목격하는 건 정말 행복한 경험이다.
- 변하고 또 변해도 첫사랑은 첫사랑___푸켓




여행에도 나이가 있다. 그 나이에 어울리는 여행이 있고,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여행이 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어쩐지 거리감 느껴지는 여행밖에 할 수 없다. 여행이 따분하거나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여행하는 방법과 나이가 맞지 않아서다.
- 여행에도 나이가 있다___라오스




손을 대면 곧장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금색 바위. 그 바위 위에 오도카니 불탑이 서 있었다. 이 불탑에는 부처의 머리카락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돌을 떨어뜨리면 단숨에 유명해지겠네. 머릿속에 섬뜩한 상상이 떠올랐다. 악마의 하수인 어쩌고 하면서 미얀마 주요 신문에 실리겠지. 일본에도 그 악명이 전해지겠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멍청한 관광객, 성지의 바위를 굴러떨어뜨리다”라고 대서특필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상상과는 반대로 돌을 만져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안 돼, 안 돼, 가까이 가면 안 돼. 이렇게 속으로 외치면서도 결국에는 손을 뻗으며 다가가고 말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바위 주변으로 울타리가 있고, 여자는 울타리까지밖에 갈 수 없다. 남자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 바위에 금박을 붙일 수 있다. 금녀의 성지인 것이다. 악마의 하수인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실망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했다.
- 가장 좋진 않아도 정말이지 참 좋은___미얀마




 
타이완 버스는 어디에서건 폭력 버스다. 운전사가 폭력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폭력적일 정도로 거세게 내달린다. 손잡이가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버스 천장에 탁탁 부딪힐 정도다. 앉아 있어도 엉덩이가 하늘 높이 떠오르고, 서 있으면 봉변을 당한다.
- 그저 완탕일 뿐이지만___타이완



고기만두나 두유를 파는 노점에서는 내 주문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는지 주인이 화를 내거나 때로는 무시했다. 어떻게든 애를 써서 원하는 것을 사고 돈을 내면, 거스름돈을 던지듯 내줬다. 또 노인이나 중년은 남녀 할 것 없이 정말 가래를 잘 뱉었다. 사선을 그리듯 뱉었는데, 내 신발에 몇 번 맞았다. 내게 침을 뱉은 것만 같아 찜찜했다. 뭘 사도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미소조차 본 적이 없다. 이런 나라는 어디에도 없으리라.



공원에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너무 추운 나머지 소변이 마려워져 화장실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말로만 듣던 문 없는 화장실이었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니 문 없이 도랑이 한 줄 있었다. 그 도랑에 다들 한 줄로 나란히 쭈그려 앉아 일을 봤다. 도랑에 생리대도 대변도 흘러갔다.
- 싫다, 싫다…… 좋다?___상하이




한국 사람은 마음이 뜨겁다고들 말하는데, 나도 짧은 기간 머물면서 실감했다. 여행하는 동안 길거리에서 싸우는 커플을 세 쌍이나 봤다. 세 쌍 모두 소리를 지르며 한쪽이 다른 한쪽을 때렸다. 남자가 여자를, 혹은 여자가 남자를 때리는 상황까지 발전하는 싸움을 도쿄에서는 1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다.
- 뜨겁고, 매운 짧은 여행___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