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별이 총총

uragawa 2019. 8. 16. 22:00

처음 먹은 맛이 그리워질 정도가 되면 그때는 손을 내밀기도 귀찮아진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싫증이 난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된다. 사랑도 유효 기한이 있는 것이고, 그리 오래 이어지는 게 아니다. 기간 한정.
-나 홀로 왈츠 中



외둥이는 좋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아이가 주렁주렁 많았다. 아이가 셋이면 하나의 사회가 만들어진다나 뭐라나, 아주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말하곤 했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건 서로 마찬가지 아닌가. 그도 저도 시간이 지나 한바탕 상처를 입은 뒤에야 깨달은 일이었다.
둘씩 셋씩 낳아봤자 하나라도 비뚤어져서 말썽을 부리면 그걸로 모든 게 끝장이다. 자식 농사에 2승 1패 같은 건 없지 않은가. 하나라도 똑똑하고 반듯하게 키워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바닷가의 사람 中



어머니는 이쪽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쓸모가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달맞이 고개 中



여자에게 손을 대고, 아이를 얘기 상대로 삼으라는 말을 한 시점에 이미 남자로서는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멍청한 놈이라고 욕해봤자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다. 자식을 키운 결과는 설마, 라고 할 만한 장면으로 나타난다.



본심에는 본심으로 대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무엇이 자신의 본심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항상 그렇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트리콜로르 中



배움이 없는 사람이 내보이는 신선함은 한순간이나마 읽는 사람에게 착시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우연의 산물이 한두 가지 나왔다고 한들 그건 실력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어디까지나 일과성의 흔적인 것을 재능이라고 착각해 버리면 본인도 주위도 몹시 귀찮아진다.




벽에 온통 책등의 제목이 늘어선 세 평 크기의 방은 창문까지 막아버리고 입구 이외의 벽은 모조리 책장으로 채웠다. 낮에도 어둠침침하지만 종이가 햇볕에 바래지 않아서 습기와 책의 무게로 바닥이 가라앉는 것만 조심하면 꽤 괜찮은 서재다.
-도망쳐 왔습니다. 中



도쿄에서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에게 반쯤 농담처럼 “속세를 떠납니다”라는 연락을 돌리고 도카치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 계절이었다. 능선의 하얀 눈을 보면 아무래도 옛날 일이 생각나버린다. 은둔이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도피일 것이다. 녹지 못하고 남은 눈에 반응을 보이는 것도 도피의 증거다.
-허수아비 中



시작에도 마지막에도 과잉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런 기대를 하는 습관이 있다. 친부모와 인연이 없다는 건 그런 것이다.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야야코는 생각했다.
-야야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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