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살문고 3

여름의 책

"사랑은 참 이상해." 소피아가 말했다. "사랑은 줄수록 돌려받지 못해." "정말 그래." 할머니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계속 사랑해야지." 소피아가 위협하듯이 말했다. "더욱더 많이 사랑해야지." "난 좀 이상해." 소피아가 말했다. "날이 좋으면 짜증이 나는 거 같아." "그래?" 할머니가 말했다. "그건 네 할아버지하고 똑같구나. 할아버지도 폭풍을 좋아했지." 하지만 소피아는 할머니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가 버렸다. 여름이 깊어 밤이 꽤 길어진 지 오래여서, 잠에서 깬 소피아는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새 한 마리가 협곡 위를 날아가며 먼저 가까운 곳에서, 이어서 멀리서 울었다. 평화로운 밤이었고, 바다 소리가 들렸다. 협곡을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지만, 마치 무언가 움직이..

한밤의 도서관 2020.04.10

죽음을 이기는 독서 -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고 싶은 인생의 책들

“나중에”라는 개념이 갑자기 비현실적이라기보다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불이 언제 꺼질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다면, 불이 꺼질 때까지 책을 읽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당신이 책에 관해서 가장 먼저 의식하게 되는 것은 책이 가진 힘이고, 책의 힘이란 결국 생각하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내가 아직 시드니 대학교에 다니던 1950년대 후반에는 스노의 소설을 알고 있어야 교양인 대접을 받았다. 당시 나는 스노의 소설들을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충격적일 정도로 지루했다. 오죽하면 지금도 스노의 소설은 다시 도전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는 최근 큰딸에게 주려고 퍼모의 대표작 『선물의 시간(A TIme of Gifts)』을 헌책방에서 샀다. 큰딸이 다 읽고 나면 책을 빌려 달라고 해서 다시 한 번 읽어 볼까 생..

한밤의 도서관 2018.10.27

검은 고양이

우리는 절벽의 끝에 서 있다. 거기서 절벽 아래의 심연을 바라본다. 어지럽고 메슥메슥 해진다. 우리가 느끼는 최초의 충동은 위험을 피해 뒤로 물러서는 것이지만, 또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그냥 거기 서 있고 만다. 우리의 구토증과 현기증과 공포는 서서히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의 구름에 휩싸인다. - 변덕이라는 심술쟁이 中 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사악하거나 어리석은 행위를 저질러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법에 어긋나는 짓임을 알면서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최상의 판단력을 무시하고 그 법을 위반하려는 충동에 끊임 없이 사로 잡히는 존재가 바로 인간 아니던가? 이 도착적인 마음이 마침내 나를 결정적인 파멸로 몰고 간 것이다. 바로 이 갈망, 스스로의 본성을 거슬러 혼..

한밤의 도서관 2017.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