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나는 가슴이 설레는 일이 생길 때면 그것이 오래가지 못하고 처참히 끝나버릴까봐 불안해하곤 했다.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때의 경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어둠 속에서 느꼈던 섬뜩한 차가움, 할머니의 젖은 얼굴에 함부로 흔들리며 들러붙던 검은 머리카락. 모든 축제는 결국 끝나버린다는 공포감, 결국 아무도 남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나는 몸을 떨었다. 모든 것은 떠나버린다, 시들어 버린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징어를 질겅거리는 율이의 옆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너도 언젠간 나를 떠나겠지. 하지만 내가 고백하지 않으면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억눌렀던 감정의 반발심일까. 율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이다보니 어느새 기묘한 감정으로 숙성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