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혀진’ 나를 위로해주는 건 어릴 적부터 사랑해온 ‘저쪽세상’의 연인들뿐이었다. 그 연인들의 존재가 나를 정화해주었다. 속이 울렁거려서 앞으로 인간과의 연애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연인들과 무균실에서 살아가리라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잿빛 거리는 비가 내리면 검게 물든다. 나는 빗물에 젖은 아스팔트 길을 걸었다. 밤이라 물웅덩이가 먹물처럼 보였다. 가로등이 비친 곳만 뿌옇게 밝은 회색으로 물들어 있어서 마치 수묵화 속을 걷는 듯했다. “당신은 역시 세상에 하나뿐인 가족이야. 봐, 당신과는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않잖아.” “부부니까 당연하지. 기다려봐, 금방 차 줄게.” 인간과의 연애는 자칫하면 금세 정형화되고 만다. 지금쯤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