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노가즈아키 4

K·N의 비극

인간이라는 생물이 구제불능인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 이소가이 자신도 포함해서 말이다. 돌계단을 오르기 전에 슈헤이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다. 어둠에 삼켜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퇴로가 가로막힌 것만 같았다. 몸을 앞으로 되돌리고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마치 엄폐물이 없는 무방비한 공간에 내던져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괴가 있다면 아무런 걸림돌 없이 자신을 덮쳐 올 터였다. 등 뒤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슈헤이는 고개를 돌려 몇 번이고 돌아봤지만 그러고 있는 중에도 등 뒤는 항상 존재했다. 뒤를 보면 앞이, 앞을 보면 뒤가 요괴 소굴로 변해 슈헤이의 등 뒤로 달라붙었다. 지금 나쓰키 슈헤이는 아내를 향한 양가적인 감정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었다. 애정과 증오, 자비와 무지비의 틈바..

한밤의 도서관 2014.02.11

제노사이드

불행이라는 존재는 그것을 보는 타인 입장인지, 직접 겪는 당사자 입장인지에 따라 완전히 견해가 달랐다. 마냥 어리던 시절은 이제 아마도 끝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까지는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부모라는 존재는 죽음을 통해서 자식에게 마지막으로 가장 큰 교육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좋게도 나쁘게도. 루벤스가 보기에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경쟁의 원동력은 단 두가지 욕망으로 환원되는 듯했다.식욕과 성욕. 인간은 타인보다 많이 먹거나 혹은 저장하고, 보다 매력적인 이성을 획득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고 발로 차서 떨어뜨리려 했다. 짐승의 본성을 유지한 인간일수록 공갈이나 협박 같은 수단을 쓰며 ‘조직’이란 무리의 보스로 올라가려 안달했다.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 경쟁이야말로 이러한..

한밤의 도서관 2013.01.21

인체모형의 밤 그리고 그레이브 디거

요새 하루에 꼭 한 권은 읽고 있는데, 최근 읽은 책 두 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읽을 때마다 (아 화장실로 달려가고싶어! 의 마음이었다.) 조마조마 설레게 한 두 권! 도서관 신간코너에 꽂혀 있던 책으로, 처음 보는 작가였는데 표지가 마음에 들어 꺼내보았다. 타이포를 재미있게 정렬했다. 나카지마라모의 ‘인체모형의 밤’ 작가소개가 골 때려서 아 이 사람 촘 멋진데?? 라고 생각하며 냉큼 책을 빌렸다. 인간의 고독과 광기 속에서 빛을 찾으려던 작가 ‘나카지마 라모’ 소설가, 수필가, 연극 각본가, 연극배우, 록 가수, 광고 카피라이터, 광고 기획자… 넘치는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거침없이 세상에 도전했던 작가 나카지마 라모는 IQ 185의 천재로 명문 중고교를 나왔지만 자유롭고 엉뚱한 그의 영혼은 엘리트의 ..

한밤의 도서관 2009.06.18

13계단

재판 제도가 지닌 문제였다. 사형에 해당하는 사건을 범 한 경우,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을 죽인 쪽이 심의 과정이 지체되면서 오래 살 수 있다. 운동장에서 그 행사를 지켜보던 난고는 문득 깨달았다. 이곳에는 300명 남짓의 살인범이 수용되어 있다는 것을. 이는 즉 그틀에 의해 이 세상에서 사라진 희생자가 300명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눈앞의 광경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특별 배급된 단팥빵에 어쩔 줄 몰라하며 맛있게 먹어 치우는 살인범들. 어째서 그들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하는가. 이래서는 희생자들이 위안을 못 받지 않는가, 하며 난고는 일종의 충격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아아 간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구나.처음에는 화자가 누구인지 집중이 잘 안되는 듯 했으나,뒤로 갈수록 아주 재..

한밤의 도서관 2009.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