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 (2009)

uragawa 2022. 3. 11. 22:30

아무리 탄탄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도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질 때가 있다. 계량기 바늘은 측정 불가능을 가리키고, 별이 소멸할 때처럼 막대한 에너지가 어두운 공간에 빨려 들어간다.

굵어진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린다. 실내의 빛이 비쳐 은색 테두리가 생긴 물방울이 다다에게는 어떤 보석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배고파.”

교텐이 말했다.

- 반짝거리는 돌

 

 

 

계란말이를 하고 전갱이를 구웠다. 된장국에는…… 버섯이 있었던가. 그리고 두부를 넣는 게 좋을까. 어젯밤에 예약해둔 전기밥솥이 마침 밥이 다 됐다고 알렸다. 좋았어, 현미밥도 지어졌고 다음은 시금치무침을 하고, 색이 좀 칙칙하니 토마토라도 썰자.

 

 

 

마호로 시민이 마호로 역 앞에 오는 것을 ‘마호로에 간다’라고 표현하는 건 어째서일까. 자기가 사는 곳도 마호로 시내인 데 이상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나카노 구민도 나카노 역에 가는 것을 ‘나카노에 간다’라고 할까?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더 구체적으로 ‘마루이 백화점에서 쇼핑한다’고 하거나 ‘선로드 상점가를 거닐고 있다’고 하지……. 그런가, 마호로 역 앞에는 구체적인 이름을 말할 만한 건물도 가게도 없어서 ‘마호로’라고만 말하는 건가.

 

 

 

일찍 일어나면 건강에는 좋지만, 여름에는 시간이 남아도는군. 호시는 멍하니 생각했다. 어릴 때의 매일도 이 느낌과 비슷했다. 간신히 해가 지는 하늘을 올려다볼 무렵에는 놀다 지친 폐가 조금 뜨겁고 아팠다.  

- 호시 료이치의 우아한 일상

 

 

 

“남자란 건 혼자 있으면 얌전하지만, 둘 이상 모이는 순간 한패가 돼서 나쁜 짓을 꾸민다니까. 나한테 좋을 일은 없어.”

다다는 ‘그런가?’ 하고 생각하면서 할머니에게 남은 보리차를 마시게 했다.

“여자는 어떤데요?”

“여자는 혼자 나쁜 짓을 생각하지.” 보리차로 젖은 입술을 핥으며 할머니는 빙긋이 웃었다. “둘 이상이 되면 서로 견제하면서 얌전한 척하지. 뒤에서는 서로 이를 갈면서.”

다다는 ‘그런가?’ 하고 또 생각하고, 교텐은 그럴듯하다는듯이 “과연”하고 턱을 쓰다듬었다.

“뭐가 과연이야.”

- 추억의 은막

 

 

 

다행이다, 하고 오카 부인은 생각했다.

오랜 고생 끝에 어른이 된 그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그렇게 끝나는 편이 좋다. 현실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괴로움이 그를 들볶을 일이 이제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이를 먹으면 참을성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사실이다. 분노와 불안은 때에 따라 아직 진정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넘친다. 상대방밖에 없는 노후의 쓸쓸함이 그렇게 만드는지, 사람의 마음을 구성하는 본질이 애정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 오카 부인은 관찰한다

 

 

 

유라는 포기를 안다. 포기는 허탈함에 좌절하지 않고 외로움을 견뎌내기 위해 필요한, 살아가기 위한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 유라 도련님은 운이 나쁘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 것 같다. 이런 상태로는 쉰 살을 맞이하고 사흘 뒤에는 아흔여덟 살이 되어 저 세상으로 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다. 멍하니 지내다가 아무런 일도 한 게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관짝에 들어가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야망 없이, 몸 하나 간신히 먹고 살 만큼의 벌이가 있는 것만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며 성실하게 일하는 나날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너무 멍청하게 사는 게 아닐까 가끔은 생각한다.

- 도망치는 남자

 

 

 

하지만 누군가와 보내는 설이 몇 년 만인지.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고 각자 좋아하는 걸 하며 시간을 보낼 뿐이지만, 방에 혼자가 아니라 생각하니 뭔가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갈 데도 없고 같이 있을 사람도 없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란 걸 알아서 안심이 되는 걸까. ‘저 녀석이라도 없는 것보다 나아’라고 무심코 생각할 만큼, 나이를 먹으니 마음이 약해진 걸까.

- 새벽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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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로역 번지 없는 땅(2009)
まほろ驛前番外地

 

 

아니! 이 책이 이제야 번역되었습니까!!!!!!!!!!!!

내가 예전에 읽던 책들 다 개정판 나오고 있다고......
(그래서 나온 건가 싶다)

 

 

 

[ 반짝거리는 돌 ]

하이시와 루루 치와와 하나짱 반갑네 ㅎㅎ

교텐의 똘끼 ㅋㅋㅋㅋㅋㅋ 반지를 왜 먹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호시 료이치의 우아한 일상 ]

호시… 직업과 달리(무슨 편견이냨ㅋㅋ) 의외?로 성실해서 내가 좋아해…

 

 

 

[ 추억의 은막 ]

요양병원에 계신 부모님의 문병을 심부름 집에 부탁하고 가족들끼리 여행 가는 효심 뭘까

 

 

 

[ 오카 부인은 관찰한다 ]

오카 부부 임대업으로 노후 여유 있으신 거 나만 부러움? ㅋㅋㅋ

오카 부인이 산책하다가 넘어져 교텐을 만났던 에피소드 읽으니 ‘드라마에서 봤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 유라 도련님은 운이 나쁘다 ]

햐, 오카 부부 에피소드에서 등장했던 동창회 여기서 이어질 줄이야 ㅋㅋㅋㅋ

유라 야무진데 딱 아이다워서 너무 좋다 ㅎㅎㅎㅎ

교텐에게 휘둘리느라 수고했네 ㅋㅋㅋ

 

 

 

[ 도망치는 남자 ]

나는 매일 생각한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다다여, 괜찮아요… ㅋㅋㅋㅋㅋ

 

 

 

[ 새벽달 ]

나왔다! 건강식품 에피소드. 이거 광소곡 영화에서 봤던 거 같은데...
어린 시절이 불우했던(것 같은) 교텐과 일찍 죽어버린 어린 아들을 생각하는 다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어린아이 돌봄 미션 이야기.

 

이제 광시곡 읽으면 되겠어




최근에도 마호로 역 만화책을 정주행 해서 등장인물들이 금방 그려지니 순식간에 집중해서 읽어버렸다
너무 재미있어.
다 읽고 나니 드라마 다시 정주행 하고 싶다.


마호로 역 시리즈 전자책도 살까 봐  ㅜㅜ




2015.06.20 - [먼지쌓인필름] - 마호로 역 앞 광소곡

 

마호로 역 앞 광소곡

まほろ駅前狂騒曲 (Tada's Do-It-All House: Disconcerto, 마호로 역 앞 광소곡, 2014) 감독 오오모리 타츠시 원작 미우라 시온 출연 에이타, 마츠다 류헤이, 코라 켄고, 마키 요코, 혼조 마나미, 아라이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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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1 - [먼지쌓인필름] - 다다 심부름집은 지금 아르바이트 모집 중

 

다다 심부름집은 지금 아르바이트 모집 중

교텐과 다다 まほろ驛前多田便利軒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 2011 • 감독 : 오오모리 타츠시 • 원작 : 미우라 시온 • 주제가 : くるり- キャメル • 출연 : 에이타, 마츠다 류헤이, 스즈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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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 [한밤의도서관] -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

“이 길은 왜 막히는 거지?" 교텐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창문을 닫았다. "밤 아홉 시에 대체 모두 어딜 가는 거야?” “아무 데도 안 가. 집으로 돌아가는 거지.” 다다는 마호로 역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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