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삶이 영원히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전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함께 나이 들지 않았다. 함께 성숙하지도 않았다. 아내와 남편은 결혼식 때 한 선서를 지키지 않았고, 이제 그들을 갈라놓는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권태였다.
- 호(弧)
소에보는 초고층 빌딩은 풍경의 일부로 여기면서도 에스컬레이터를 보고는 겁에 질렸다. 자동차와 고속도로와 자기보다 훨씬 크고 피부색도 다양한 인파가 잰걸음으로 걸어가는 광경은 어찌어찌 받아들였지만, 아이스크림이 준 충격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유당 분해 효소가 없어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배앓이를 하면서도 더블 콘이 주는 쾌락을 누리려고 복통을 이겨냈던 것이다. 개는 줄에 묶인 반려견만 봐도 멀찍이 피했지만, 공원에 사는 오리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좋아했다.
- 매듭 묶기
알고리즘은 미리 정해진 코스를 따라 실행되었고, 우리의 사고는, 그 알고리즘을 차례로 따라갔다. 제 나름의 궤도를 따라 회전하는 행성처럼 기계적으로, 예측대로. 알고 보니 시계공이 곧 시계였던 것이다.
- 사랑의 알고리즘
나는 여행을 떠나는 리즈에게 주려고 파이 두 개를 구워서 새로 산 스마트 밀폐 용기에 넣었다. 컴퓨터 칩이 붙어 있어서 습도가 조절되는 용기였다.
“가져가서 비행기에서 먹어. 출출할 때.”
“여행은 말이야.” 리즈가 말했다. “우리 정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일 뿐이야. 내가 하는 일은 새로운 정신을 창조하는 거고. 그러니까 내 삶은 곧 수많은 정신과 만나는 과정인 거야.”
- 카르타고의 장미-싱귤래리티 3부작
“안 돼. 그 사람들은 죽음을 피해 달아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하지만 현실 세계를 포기하고 시뮬레이션이 되기를 선택하는 순간, 그 사람들은 죽어. 죄악이 존재하는 한 죽음도 존재해야 해. 삶이 의미를 얻는 수단이 바로 죽음이니까.”
- 뒤에남은 사람들-싱귤래리티 3부작
문명이란 죽음이라는 현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점점 더 정교해지는 거짓말을 쌓아 가는 과정이다. 당신은 여전히 드넓은 대양의 건너편에 있다.
-곁
“탐험은 인류의 숙명이야. 하나의 종(種)으로서 우리는 성장해야만 해. 네가 어린아이에서 성장해 가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가 탐사할 세계는 끝도 없이 많다, 데이터 센터라는 이 우주 안에만 해도.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고, 심지어 자기만의 다중 우주도 창조할 수 있다. 그럴 마음만 먹으면.
뒤이어 엄마는 맨해튼의 전성기를 나에게 생각해 주었다. 그곳이 육체를 지닌 인류로 가득하던 시절, 에너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소비하던 시절을. 사람들은 널따란 공간을 한 명 아니면 두 명이 독차지하고 살았고, 냉난방을 가동한 상태로 사람을 실어 나르는 기계를 소유했으며, 음식을 만들고 옷을 세탁하는 등 온갖 신기한 일들을 했다. 그러는 동안 내내 탄소를 비롯한 갖가지 독소를 상상도 못 할 만큼 빠른 속도로 대기 중에 분출했다. 인간 한 명이 소비하는 에너지양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은 의식 100만 개체를 부양할 만큼 막대했다.
그러다가 싱귤래리티가 도래했고, 육체를 지닌 인류의 마지막 세대가 저세상 또는 데이터 센터로 떠나면서, 이 거대한 도시는 적막에 휩싸였다.
-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싱귤래리티 3부작
“가끔은 뭐가 진짜로 옳은 일인지 가늠하기 힘들 때도 있어. 그럴 때면 옳다고 느끼는 쪽을 택해야 하는 거야.”
“아니요, 규칙대로만 하면 언제든 뭐가 옳은지 알 수 있어요.”
“아프리카 출신들 같은 경우는, 남자들은 모두 제노사이드를 피해 도망 왔다고 하고, 여자들은 군인한테 겁탈당하거나 성기 절제를 당할 뻔했다고 하지. 중앙아메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찰하고 결탁한 폭력 조직을 피해 도망 왔다고 하고. 중국에서 온 경우는, 여자들은 다들 정부에 임신 중절을 강요당했다고 하고, 남자들은 누구나 크리스천 아니면 반체제 운동가야.”
“거짓말이라고는 안 했는데. 이야기란 건 말이지, 어떤 이야기든 간에, 네가 진실이라고 믿을 때에만 진실인 법이야.”
-달을 향하여
“새로운 맛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즐거워하는 로건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건 ‘마라[麻辣]’라는 맛이다. 촉(蜀) 땅의 이름을 중국 전역에 알린 얼얼한 매운맛이지. 조심해라, 그 맛은 사람을 살살 꼬드겨서 먹게 해 놓고는 입안 가득 불을 질러 댄다. 하지만 한번 익숙해지면 혀가 춤을 추고 그보다 순한 맛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지.”
- 모든 맛을 한 그릇에 .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2020)
리디북스에서 90일 대여한 책.
와, 신간 소식 듣자마자 디자인 표지 봤는데
너무나 너무네? ㅋㅋㅋㅋㅋㅋㅋ
종이책 구매했다가는 바로 안 읽을 것 같아서 전자책으로 대여했다.
책 소개를 보니
‘모두 시간과 공간, 차원을 초월한 형태의 다양한 가족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각기 죽음과 영생, 인종과 문화의 충돌 등 동시대 현대인들이 가진 여러 관심사를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고 한다.
저자 머리말
도래할지도 모르는 미래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작가의 말 보고 띠용 됨
나는 심지어 (표현 자체가 변명처럼 들리는) ‘도래할지도 모르는 미래’에 관해서도 쓰지 않는다.
내가 쓰는 이야기는 대부분 의도적으로,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도래할 리 없는’ 미래에 관한 것들이다.
이걸 기억하고 작품들을 읽어나가니까
미래긴 한데 현재랑 별로 다를 게 없고, 꼭 미래가 이럴 것이다! 할 수가 없네 ㅋㅋㅋㅋㅋ
[호(弧)]
《더 매거진 오브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 픽션(The Magazine of Fantasy & Science Fiction)》, 2012년 9/10월호
와 역시 첫 작품부터 너무 재미있구먼?
출산과 인생을 이렇게 풀어낼 수 있단 말인가?
[심신오행(心神五行)]
《라이트스피드(Lightspeed)》, 2012년 1월 24일
아, 이거 너무 재미있었어.
타이라와 아티가 대화하는 첫 장면부터 너무 몰입이 되는 것이었다.
[매듭 묶기]
《클락스월드(Clarkesworld)》, 2011년 1월
한글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작품.
신약 개발을 위해 소에보에게 접근하는 사람들.
매우 현실 같은 이야기라서 읽다가 너무 화가 남 ㅋㅋ
[사랑의 알고리즘]
《스트레인지 호라이즌스(Strange Horizons)》, 2004년 7월
정해진 코스에 따라 실행되는 사고의 알고리즘 끄앜
[카르타고의 장미(싱귤래리티 3부작)]
오슨 스콧 카드, 키스 올렉사 편, 『꿈과 기적의 제국: 포보스 SF 단편선집 제1권(Empire of Dreams and Miracles: The Phobos Science Fiction Anthology (v. 1))』, 2002년
작가의 데뷔작
3부작이라고 하니까 단편인데도 가볍게 읽을 수가 없었다.
습도가 알아서 조절되는 스마트 밀폐용기
너무 갖고 싶은데요 작가님 ㅋㅋㅋ
[만조(滿潮)]
《데일리 사이언스 픽션(Daily Science Fiction), 2012년 11월 1일
달과 어느 가족의 짧은 이야기
[뒤에 남은 사람들(싱귤래리티 3부작)]
《클락스월드(Clarkesworld)》, 2011년 10월 1일
죽음을 택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잔류자'가 사는
싱귤래리티의 이야기
영생을 살고 싶어 의식을 하드웨어에 업로드하는 미래가 오긴 오.. 는거겠지?
[곁]
《언캐니(Uncanny)》, 2014년 11/12월호
으앜 이것도 짧지만 너무 심오했다.
간병인 인간미 제로 ㅋㅋㅋㅋㅋ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싱귤래리티 3부작)]
《더 매거진 오브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 픽션(The Magazine of Fantasy & Science Fiction), 2011년 5/6월호
엄마와 헤어지기 전, 함께 떠난 하루 같았던 45년의 여행
[달을 향하여]
《파이어사이드(Fireside)》 1호, 2012년 4월 17일
소름 소름
[모든 맛을 한 그릇에 .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
《기가노토소러스(GigaNotoSaurus)》, 2012년 2월(이후 미국판 『종이 동물원』에 수록)
요건 바둑이 나오네?
요리 이야기도 나오고, ㅋㅋ 하면서 읽다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띠용 됨.
[내 어머니의 기억]
《데일리 사이언스 픽션(Daily Science Fiction)》, 2012년 3월 19일
이건 다 읽고 나니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영화 속에 나온 영화 이야기가 생각났어!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제껏 책으로 엮인 적이 없는(그러므로 ‘원서’가 존재하지 않는) 켄 리우의 중단편 소설 열두 편을 엮어 만든 이 책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는 이전 단편집과 달리 느슨하게나마 수록작들을 하나로 묶는 주제가 존재하는데, 다름 아닌 ‘초월’이다. 수록작 가운데 굳이 나누자면 SF로 분류될 이야기들은 육체라는 존재 양식만이 아니라 시공마저도 초월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와우! 작가님의 다른 책이 얼른 번역됐으면 좋겠다!
켄 리우의 단편 열한 편을 묶은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와 얼마 전 미국에서 발간된 최신 단편집 『은낭전(The Hidden Girl and Other Stories)』, 장편 판타지 시리즈 ‘민들레 왕조 연대기’의 2부인 『폭풍의 벽(The Wall of Storm)』 또한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선보이리라는 전언을 끝으로
그러고보니 화자가 다 여자인 것 같았다. 이번 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