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동물학자라면 이 정도 사건에 호들갑을 떨지 않게 된다. 한번은 부모님이 시장에서 구입한 커다란 상어의 배를 갈랐더니, 그 안에 사람 손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앨커트래즈처럼 탈출이 어렵기로 유명한, 바다 한가운데의 감옥 섬에서 희생된 죄수의 손이 아닌가 싶었다. 누군가 탈출을 시도하다가 거센 파도에 휩쓸려 속수무책으로 넓은 바다로 끌려갔을 것이다. 그 감옥에서 탈옥한 후 본토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들 하니까. 하지만 그 상어는 사람을 잡아먹는 종류가 아니었으니 손은 사람이 죽은 후에 우연히 상어 입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컸다. 나중에 이 상어는 속이 제거된 후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킬에서 작가로 일하고 있던 코둘라 고모를 다시 만났다. 고모는 내가 모든 동물을 학명으로만 알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림책에서 올빼미를 보고 내가 “아, 오투스Otus다. 라고 했더니 고모는 엄마를 나무랐다.
“맙소사, 마리아! 왜 어린애한테 이런 걸 가르쳐요?”
하지만 그 시절에는 독일어 이름이 없는 동물이 많았고, 있다손 쳐도 부모님은 그 명칭들이 적절하지도 않고 오해의 소지도 있다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 역시 세상에 완벽하게 안전한 곳은 없다는 사실을 몸소 익히며 성장했다. 우리가 두 발로 딛고 서 있는 단단한 땅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지식은 곤경에 처했을 때 침착하게 대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역시 내가 비행기 추락이라는 악몽에서 살아남은 하나의 이유인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부터 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요상한 현상들에 이골이 나 있었다. 라마 도심지 한복판에 위치한 정원에 독사가 나타나거나, 악령이 쥐고 흔드는 듯 한밤중에 침대가 출렁거리는 것이 그 예다.
내 경험상 가혹한 시련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에는 고통이 끔찍할수록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다. 공포감은 한참 후에 비로소 찾아온다. 말을 타고 살얼음으로 뒤덮인 호수를 건넌 사람이 반대편에 무사히 다다르고서야 여태 말을 달려 지나온 얼음이 얼마나 얇았는지를 깨닫고 갑자기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잖은가.
낮에는 수영을 하거나 물에 떠다녔고 밤에는 덩치 큰 동물들과 몇 번 마주치기도 했다. 한번은 덤불 속에서 잠을 청하는데 바로 옆에서 쉭쉭 대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재규어가 아니면 오실록ocelot(남아메리카에 거주하는 고양잇과 동물로 몸길이 50~100센티미터에 황갈색 얼룩무늬가 있다)일 가능성이 컸다.
정오쯤 되자 남자들은 요기를 하려고 배를 세웠다. 우리는 물가로 나가 초원 한가운데에 서 있는 집으로 향했다. 내가 다가가자 어린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한 여자는 겁에 질려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돌아섰다. “그 눈, 도저히 못 보겠어요! 맙소사, 너무 무서운 눈이에요!”
나는 남자들에게 물었다. “왜 저러죠? 내 눈이 어때서요?”
그제야 그들은 내 눈이 시뻘겋다고 말해주었다. 혈관이 전부 터져서 흰자 부분이 완전히 충혈된 탓이었다. 홍채까지 붉게 변한 상태였다. 앞이 비교적 잘 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지간히 놀랐다.
나중에 거울을 보고서야 그 여자가 왜 그토록 질겁했는지 알 것 같았다. 눈이 아니라 마치 피투성이 전구를 꽂아놓은 것 같았다. 처음 발견한 남자들이 나를 밀림의 정령이라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내게 수프 한 그릇을 내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거의 삼킬 수 없었다.
언제나 당혹감을 안기는 다양하게 각색된 내 이야기를 읽는 것이나,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당시 상황을 나보다 더 잘 안다고 말하는 것에는 차츰 익숙해질 것이다. 하지만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것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밀림을 헤매던 내 경험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얼마나 자극했는지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그중의 끝판왕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소설 『밀림의 여신은 울지 않는다A Jungle Goddess Must Not Cry』이다. 저자인 콘살리크Konsalik 는 내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이 조잡한 소설을 쓴 것이 틀림없다. 열일곱 살의 금발 소녀가 아마존 유역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를 당하는데, 참 편리하게도 용감한 젊은 남자와 함께 살아남게 된다. 그러다 위험한 인간 사냥꾼의 눈에 띄어 태양의 여신으로 유괴된다는 얼토당토않은 유치한 이야기다.
팡구아나도 리마나 뮌헨만큼이나 현실이지만, 확연히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 도시에서 자연은 너그러운 손님이다. 나무 몇 그루를 심고, 창문 앞에 화분을 두고, 동물을 키울 때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여기 팡구아나에서는 자연이 주인이고 우리는 방문객에 불과하다. 서류상으로는 내 소유지만 나는 이 땅을 대자연으로부터 빌린 것 혹은 위임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 생물학자들은 이곳에 와서 감탄하고 배우고 기록하고 새로 습득한 지식을 인간 세상에 전한다.
“이 주위에 딱정벌레, 개미, 풍뎅이, 진드기 같은 생물이 몇 마리나 기어다니고 날아다니는지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죠?”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연구를 통해 잘 알게 된 대상만 제대로 보호할 수 있습니다. 숲과 생물다양성을 눈앞의 이익을 위해 파괴하는 것보다 보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유익하고 가치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다우림을 오로지 버려진 땅. ‘녹색 지옥’이라고 여긴다면 돈의 가치를 모르고 지폐를 불쏘시개로 쓰는 어린아이들처럼 경솔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박쥐의 보드라운 털은 내게 새롭고 유쾌한 경험을 선사했다. 나는 박쥐를 쓰다듬는 것이 좋았지만 녀석들은 참아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만지려다 끊임없이 손을 물렸지만, 나중에는 녀석들의 억센 송곳니 맛을 보지 않고도 특수한 그물에서 꺼내는 요령을 차츰 터득했다. 쏘이면 못 견디게 아픈 커다란 야행성 말벌이 그물에 걸릴 때도 있었고 맹금류가 박쥐를 잡아먹으려 덤비기도 했다. 한번은 테이퍼 한 마리가 막무가내로 돌진해 그물을 찢고 지나가기도 했다. 박쥐들은 날카로운 송곳니와 강력한 턱으로 아주 두꺼운 장갑까지 뚫었다. 일단 이빨을 박아 넣으면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면서 더 힘을 주었다.
처음에는 숲속에 들어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밀림에 처음 발을 들이는 많은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 주위에는 오로지 무성한 녹색 식물뿐이다. 그곳에 사는 수많은 동물들이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했기 때문이다. 나뭇잎에는 색깔이 거의 비슷한 손톱만 한 개구리들이 앉아 있지만 잎을 한참 들여다봐야 그 존재를 알아챌 수 있다. 메뚜기, 날벌레, 거미도 나무 껍질이나 가지의 일부처럼 보인다. 뱀은 나뭇가지에 가만히 누워 잔가지로 위장하거나 땅에 흩어진 낙엽 속으로 완벽하게 ‘자취를 감출 수’있다. 밀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그런 미묘함을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일단 이 세계에 들어오면 귀신같이 알아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눈을 가린 막이 벗겨지면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생명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벅찬 깨달음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숲이 한번 파괴되면 되살리는데 수백 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기후가 변하고 강물이 말라가고 있다. 젊은 사람일수록 그런 현실을 더 자주 목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그런 상황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확신한다.
모든 것은 이 밀림에서 시작됐다. 생사를 건 기나긴 여정 중에 나는 만물과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어떤 것도, 어떤 생명도 그냥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때 이후로 나는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고 있다. 그 말은 부모님의 원칙처럼, 그날의 다툼을 밤까지 품고 가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어릴 때부터 이미 내 가슴에 각인되었다. 부모님은 나를 가르치지 않았다.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전해주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부모님이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이다.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 삶, 용기 그리고 밀림에서 내가 배운 것들
Als ich vom Himmel fiel(2011)
도서관에서 대여한 전자책.
도서관 대여 가능한 목록에서
‘제목이 독특해 눈길이 가 이건 무슨 소설이려나?’하고 찾아봤는데,
소설 아님. 실화였다.
이 책은 에세이였음. ㄷ ㄷ
비행기 추락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사람이
10대 소녀라니요.
거기다 영화화 된다 하니 궁금해서 읽어 보았다.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가다
우연하게 살아남게 된 것은 아니었고,
동물학자 부모님과 함께 어린 시절 숲에서 생활했던 경험과,
자연스럽게 쌓인 지식이 아니었으면,
사람이 살지 않는 빽빽한 숲에서 11일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었단 말인가?
+
숲과 생태계가 계속 망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모든 사람이 심각성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청에서 팡구아나 문제를 도와주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지만, 모든 직원들이 모여들어 나와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
책 읽다 등장한 음식 설명에 배가 고파진 ㅋㅋ
6월 24일의 산 후안 축제(밀림에서 하지는 독특한 전통 행사가 있는 날이다) 등도 특별한 날이다. 그때는 모든 주부들이 자부심을 담아 바나나 이파리로 만든 작은 주머니에 강황밥, 삶아서 다진 닭고기, 블랙 올리브, 완숙 달걀을 넣은 후아네서juanes를 준비했다.
+++
요즘 조금이나마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중인데,
관심을 갖지 않았던 시점이었다면 단순하게
‘비행기 사고에서 혼자 어떻게 살아남았단 말이지? 궁금한데?’
이 부분만 흥미롭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율리아네 쾨프케가
부모님과 같은 길을 걸으며 숲을 보호하려는
현재 진행형 모습은 정말 멋지다.
++++
이야기를 다 마친 후
뒤 쪽에 엄마와 함께한 사진, 부모님의 모습,
정글에서 살던 시절의 집, 팡구아나의 숲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