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

uragawa 2020. 7. 2. 22:30

여전히 독서 모임은 매번 정원을 채우기가 힘들다. 점점 나아지겠지 하며 진행하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 지인들을 끌어들이는 다단계 판매 방식과 흡사하다. 책 또한 지인들이 얼마나 많이 사갔던가. 그래서 3개월 동안 월세 안 밀리고 출판사와 독립출판 제작자에게 정산을 다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딱 그 정도다. 남은 돈은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어줄 정도의 금액뿐이다.



다음 날 출근하면 책방은 텅 비어 보인다. 사방이 책이지만 책은 보이지 않고 빈 공간만 눈에 들어온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골목에는 점점 인적이 뜸해진다. 특히 요즘처럼 폭염이 이어지는 날은 더욱더 그렇다. 책방을 두드리면 텅텅 소리를 낼 것 같다. 책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읽어주는 이들이 있어야 비로소 책은 책으로서 빛난다. 모임으로 인한 피로도는 슬슬 물러나고 나는 다시 새로운 모임을 생각한다. 여기 책방이 있다. 이곳에선 이런 모임들이 있다.
이곳은 무엇으로도 가득 채워질 수 있는 텅 빈 공간이다. 책방을 더욱 텅 비게 만들어서 더 많이 채워야지. 그러려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책 얘기를 하다가 친해져서 돌아가길 바란다.



그러고 보니 많이 받는 질문이 하나 더 있는데, “요즘 왜 이렇게 책방이 많이 생겨날까요?” 이다. 각자 책방을 차린 이유를 내가 일일이 아는 것도 아니니까 뭐라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지만 어쨌거나 새로운 책방이 생겼다면 관심을 가지고 들러보면 좋겠다. 가까운 곳에 가서 ‘어떤 인간이 요즘 세상에 돈도 안 되는 책을 팔지?’ 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고서 기대 없이 그곳에 가길 바란다.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행복하다. 같이 갈 장소, 먹을거리, 나눌 얘기들을 미리 생각하면 혼자라도 즐겁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을 즐길 줄 안다면 책 파는데 안성맞춤인 능력을 간춘 거라고 말하고 싶다(최고의 능력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능력을 가졌다고 책을 많이 팔 수 있는 건 아니다. 기다리기만 한다고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거나 알아서 책을 사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덜 지칠 수 있다. 책방 문을 열고 닫을 때까지 손님 없는 시간이 초조하거나 불안하거나 심심하거나 절망스러웠다면 정말이지 책방을 유지하지 못했을 거다. 기다리는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 하루를 즐길 수 있다면, 내일도 책방을 열 수 있다. 책방을 운영하려면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는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



책방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 한 가지를 꼽으라면 책에 대해 좋은 얘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점이 있더라도 침묵한다. 단점을 얘기한다고 책에 대한 애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얘기해버리고 나면 확실히 손님들은 손에서 책을 내려놓는다. “이 책은 문제의식이 돋보이지만 문장이 좀 난해해요(‘엉망진창이에요’의 순화된 표현)” “이 책은 묘사가 기가 막히지만 결말이랄 게 없어요(‘작가가 아무 생각이 없어요’를 에둘러 말함)” 정도로만 말해도 외면받는다.



흔히 책방에서 여유롭게 책 읽으면 좋겠다고들 하는데, 속 모르는 얘기지만 가끔 없는 여유를 만들어 책을 읽으면 정말 좋다. 아마도 내가 책방을 열면서 꿈꿔왔고 책방을 내고 싶은 많은 이들이 이상적으로 여길 여유로움일 것이다. 근무 중에 그런 여유를 만들어 책을 읽는 것도 책방 주인의 일이다.



책방이 타인의 서재와도 같은 곳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중의 니즈를 파악하고 고객의 동향을 분석하여 그들이 원하는 책을 구비해놓는 것일까? 목요일에는 회사원들이 많이 지나다니니 ⟪대리에서 부장으로 가는 18가지 지름길⟫(없는 책이니 검색하지 마세요)을 노출시키면 매출이 오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상상만 해도 재미가 없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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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
- 이후북스 책방일기
(2018)



도서관에서 대여한 전자책.

이후북스는 예전에 한 번 방문했던 기억이 있는데,
책을 읽다 검색해보니 내가 알고 있는 위치가 아니더라고?
그래서 '내가 못 가본 곳이구나?' 했는데
내 기억은 정확했고, 최근에 이사를 했다고 한다.

일기 형태라 쭉쭉 읽기 좋았다.
출근시간에 다 읽어버림. ㅎㅎ



+
갑자기 책 읽다 분위기 토마토청

토마토청
방울토마토를 살짝 데쳐 껍질을 간 다음
설탕과 1:1 비율로 섞어 만든 청에 탄산수를 타서 마시면
끝내주는 토마토에이드가 됩니다
.



++
망원으로 이사 간 서점에 놀러 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