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미리 처럼 도서관에 가기 위해 여행지를 고른 적은 없지만 여행지에서 도서관을 만나면 일단 들어가고 본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방전된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충전할 수 있으며 화장실까지 해결된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마실 물이 있고 앉아서 쉴 만한 의자가 있다. 서가에 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 살펴보는 건 맨 나중 일. 책을 둘러보기 시작하면 도서관에 발이 묶이기 십상이니 아쉬워도 간단하게 일별한다.
도서관에는 분명히 좋은 책이 많이 있다. 하지만 모든 좋은 책이 내게 영감을 주진 않는다. 다른 사람의 경험이 순식간에 내 경험이 될 수 없고, 아무리 훌륭한 작가의 인생 좌우명이라 해도 단숨에 본받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흠 없고 진실한 문장이어도 나와 그 문장 사이에서 내밀한 연결선을 찾을 수 없다면, 그 문장에서 나의 이야기를 보태어 쓸 수 없다면, 그건 내가 함부로 끌어올 수 없는 타인의 문장이다.
한 지역 도서관에서 북페이백 서비스를 시행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용자가 필요한 책을 지역 서점에서 사서 읽은 뒤 30일 이내에 반납하면 서점에서 이 책을 도서관에 납품하고 이용자에게는 책값을 환불해 주는 서비스이다. 도서관에 희망 도서를 신청해 놓고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책을 서점에서 사서 바로 읽고 도서관에 되파는 방식이다.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입으로는 “사서가 힘들겠네”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도서관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소식만 들으면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증세였다. 그 아이디어를 내고 시행하기까지 얼마나 고생했을까. 시행하고 나면 또 얼마나 고생할까. 모든 진행 과정을 시시때때 관리해야지. 지역 서점과 소통해야지. 한두 서점에 일괄 지급했던 도서 대금을 일일이 쪼개서 각 지역 서점에 환급해야지. 아휴, 또 뭐냐……. 아직 시행도 하기 전인 서비스에 토를 달고 있는 내게 남편이 한마디 했다. “그래도 그런 서비스가 있으면 책을 안 사던 사람도 한 번은 사 보게 되잖아.”
도서관 사서를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누군가 책에 그어 놓은 밑줄이다. 데스크에 낮아 하루 종일 그 밑줄을 지운 적도 있었다. 한번은 외부 반납함에 반납된 책을 처리하던 중에 낙서 도서를 발견했다. 도서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책이었는데도 밑줄과 메모가 가득했다. 게다가 연필과 볼펜을 섞어 써 놓아서 도저히 복구가 안 될 지경이었다. 책의 대출 이력을 확인해 보니 희망도서로 신청한 이용자가 대출한 것이었고 지금껏 이 책을 대출한 이용자도 그 한 명뿐이었다. 오래된 책에도 낙서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새로 신청한 책을 빌려 가서는 자기 책처럼 다루다가 헌책을 만들어서 반납하다니! 이용자에게 전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읽다보니 자기 책인 줄 알고 밑줄을 그었다는 괴상한 답변이 돌아왔다. 며칠 후 이용자는 새 책으로 변상했고, 헌책은 낙서의 주인에게 돌아갔다.
생각할수록 책이란 물건은 참 요긴하다.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목적과 용도를 지니고 있지만 다른 물건을 저장하는 장소로도 탁월하다. 사진이나 쪽지, 가끔은 돈이나 영수증도, 온갖 소지품이 달그락거리는 가방 안이라도 책 한 권만 있으면 구김 없이 보관할 수 있다.
신촌의 작은 독립 서점 ‘이후북스’는 내가 독립 출판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서점 중 하나이다. 또한 사장님의 제안으로 『상호대차』를 만든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막 도서관을 그만두고 침울한 상태였던 나는 이후북스와 작업한 덕에 그 시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나를 알아줘서, 믿어 줘서 고마웠고, 그게 이후북스 사장님의 작업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더욱 좋아지는 관계의 선순환이 이어지는 중이다.
도서관의 말들
- 불을 밝히는, 고독한, 무한한, 늘 그 자리에 있는, 비밀스러운, 소중하고 쓸모없으며 썩지 않는 책들로 무장한(2019)
도서관에서 대여한 전자책.
[마리카의 장갑] 실패하고,
[세계의 끝, 바다의 맛]도 실패하는 바람에 얼른 대여한 책ㅋㅋㅋ
바로 얼마 전 이후북스 책 읽었는데
여기에 이후북스 이야기가 있네?
여기서 독립출판물 만드는 수업 들으셨나 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