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그 조작 대상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그렇게 의심을 하게 만든 자가 결국에는 그 대상에 대한 지배력을 얻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죠. 일종의 세뇌라고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합니다.
이수정 우리 사회가 가정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폭력이 상존하는 곳은 전쟁터지 가정이 아닙니다. 가정이 국가의 사법권도 침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위치에 있는 듯 취급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수정 여자들도 가부장적인 사고를 합니다. 특히 종속되는 것이 사랑인 양 착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대등한 관계에서만 성립할 수 있습니다. 너의 인격과 나의 인격을 서로 인정해 주고, 용인하고, 약점은 약점대로 수용하는 것이 정말 성숙한 사랑이죠. 한 사람은 모든 것을 제공하고 다른 한 사람은 혜택 안에서 안주하는 것은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그건 연인 관계가 아니라 부모 자식 관계죠.
'나는 이 폭력으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구나.' 하는 체념 끝에 결국에는 폭력을 피하지 않게 됩니다. 조금만 있으면 끝날 텐데, 이 사람이 지금 술 취해서 이러니까 술이 깨면 이 고통이 끝날 텐데, 하고 생각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원래 착한 사람이고 이 사람이 돈을 벌어 와야 내 자식을 먹이니까 참자, 참는 것만이 답이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죽는 여자들이 일 년에만 칠팔십 명은 됩니다.
기존 종교의 교리를 달리 해석하는 흐름을 이단이라고 한다면, 사이비 종교는 그것보다 훨씬 더 범죄적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는 경우를 지칭합니다.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 집단은 집단 내에 절대 신과 같은 존재가 있고, 그들의 주변에 이른바 지도층이 존재하여 일반 신도들을 경제적, 또는 성적으로 착취하는 구조가 일반적입니다.
이다혜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여성이 신내림을 받아 무속인이 되면 보통 장군님을 모십니다. 여자의 몸을 하고 있지만 굉장히 권위 있는 남자의 목소리로 호통을 치고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자의 목소리로는 조언을 할 수 없다는 것일까요?
이수정 아주 예리하고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심지어 귀신일지라도 가부장적인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웃음)
이다혜 사실 한국에도 타자에 대한 편견이 많습니다. '우리'라고 규정된 집단 밖에서 온 사람 말이죠. 그중 제가 가장 많이 들은 표현은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위가 잘못 들어와서 집안이 망했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집안 식구들이 자꾸 아프면 나쁜 생활 습관과 유전적 요인 때문일 확률이 높겠지요. 그것이 그 집안이 원래 갖고 있는 문제인데도 며느리 탓을 많이들 합니다. 그런 표현들 자체가 계속 함께 살아 온 '우리'와 새로 들어온 '누군가'를 분리해서 낯선 이에게 안 좋은 일을 덮어씌우는 논리처럼 들립니다.
안인득 사건 당시 살해당한 여고생도 사건 전부터 안인득에게 계속 스토킹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의 가족이 경찰에 신고를 안 했고, CCTV에도 찍혀 있지 않았다면 안인득이 그 여학생과 사귀었다고 거짓 주장을 해도 안인득의 진술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 자체가 너무나도 가부장적입니다. 남자는 원래 그런 식으로 구애하는 존재, 여자는 원래 속마음은 '예스'이면서도 '노'라고 말하는 존재로 취급하면서,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의 진술에 의해 실제로는 애인도 아니고 부부도 아니었던 피해자가 억울하게 파트너로 둔갑해 버리는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그냥 성관계를 좀 할 수도 있는 건데, 나를 성폭력으로 고소하다니. 그럼 내가 돈을 주고 너의 성을 산 것으로 하겠다. 그러니 합의해달라.' 이런 식의 사고를 하는 가해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법 제도 내에서 합의금을 감경 사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긴 하나 합의 제도 자체를 비난할 수만은 없습니다. 안 그러면 피해자에게 마음의 위로라는 형태를 어떻게 입증하겠느냐는 현실적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다혜 성범죄와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반인들도 불법 동영상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성에 대한 인식 문제와 관계가 있을까요?
이수정 관계가 있죠. 그리고 이 문제가 곧 내 문제일 수 있다는 연대 의식이 중요합니다. 살마들이 '내가 이 불법 동영상을 보면 피해자 여성이 자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상을 볼까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동영상을 보지 않는 많은 여성들도 이건 내 문제가 아니니까, 나는 이런 동영상에 노출될 리 없으니까, 나는 안전한 관계만 맺고 있으니까, 하면서 불법 동영상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동영상을 보는 남성들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결코 일부 여성 또는 일부 남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컨대 안전한 화장실을 사용하고, 안전한 차량을 타고, 안전한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집에도 보안 장치가 잘 돼 있어서 아무나 집에 들어올 수 없는 환경에서 사는 여성이, 디지털 성범죄의 취약한 환경에서 사는 여성들에 대해 그건 그들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실을 동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하는 남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피해자를 외면하는 것 자체가 가해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범죄학에는 여성 범죄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악녀 가설'이 있습니다. 보통 피의자가 여자라면 경미한 폭력 범죄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데 여자가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이면 여자가 감히 사람을 죽이다니! 하며 남자보다 형량이 훨씬 높아진다는 거죠.
인권은 중요하지만 누구의 인권도 절대 가치가 될 순 없습니다. 결코 한 쪽만 옳고 한쪽만 틀리는 일은 없습니다. 결국 정부는 공동체가 안전하게 함께할 수 있도록 상호간의 양보를 이끌어 내고 갈등을 조정해야 합니다.
이수정 미래에는 성 규범이 크게 바뀌어서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결혼하지 않은 채 각자 사는 시대가 되어, 「번지점프를 하다」를 보면서 그때는 그래도 남녀가 저렇게 싸우기도 했구나 하고 향수를 갖게 될지도 모르지요. (웃음)
청소년 집단 폭행 사건들의 배후에 랜덤 채팅 앱이 있습니다. 앱은 정부 중소 IT 기업에서 만듭니다. 여자아이들과 채팅하는 시간에 벌어들이는 수익은 업체와 아이들이 반반씩 나누어 갖거나, 혹은 아이들에게 훨씬 적은 돈을 주고 업체에서 착복합니다. 보통 여자아이들은 채팅을 하면 상품권이나 포인트를 지급받고, 성인 남성들은 회원 등록을 할 때 돈을 냅니다. 앱을 사용하는 여자아이들이 많아야 성인 이용자들이 앱으로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기 떄문에 성인 남자들은 돈을 내고, 여자아이들은 돈을 안 내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이수정 네, 현재 한국 형사 정책의 목적은 예방이 아닙니다. 불법적인 랜덤 채팅 앱 업체에게 책임을 묻고 손해 배상까지 청구할 수 있도록 법적 책임을 명기해야 하는데, 현실은 아직 스토킹 방지법도, 아동 유인 방지법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을 착취해 금전적인 이득을 올린 불법 채팅 앱 업체들은 IT 재벌이 됩니다.
이수정 요즘은 청소년 성매매가 워낙 만연해 아동 청소년에 대한 특별한 도착이 없는 사람들도 너무나 손쉽게 유입됩니다. 휴대폰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이 분야 전문가들은 보고서를 쓸 때 '아동 청소년 성매매라고 쓰면 안 된다, 이건 성착취로 용어를 바꿔야 한다.'라는 논리로 성 착취라는 용어를 씁니다.
이수정 네, 피해자에게도 일상을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강간을 당한다고 해서 인생이 종결되는 것도 아니고, 사법적 정의도 금방 실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대응은 사실 피해자의 생존 본능이고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반응을 보면 우리 사회에 성폭력에 대한 몰이해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게 됩니다. 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조두순 사건의 피해 아동처럼 피해를 그대로 발언할 기회가 없었던 탓에, 그간 우리 사회에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도 그중 하나일 것입니다.
신고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피해자들은 정말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오랫동안 남편에게서 학대받아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때문에 형사 사법 기관을 믿고 신고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용기 있는 일이며, 피해자에게 그 점을 짚어 주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이수정 강간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를 주목하는 태도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 절제를 못하는 가해자의 욕망이 문제지, 피해자가 어떻게 생겼느냐, 피해자가 어떤 특성을 가졌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책을 골라 읽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온갖 범죄 소설을 읽고 커 온 내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장르를 다른 눈으로 돌아보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여자는 너무도 자주 첫 장면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시체였고, 남자의 범행동기가 되는 흑막이었고,
"범죄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매체는 관심 없습니다. 여성이나 아동 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범죄 영화를 다룬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트위터책빙고 2020]
22. 팟캐스트 또는 유튜브와 관련 있는 책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할 때만 해도
아니, 범죄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을 프로파일 한다는 거 아니었어?
자꾸 딴 길로 샌 다음에 끝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에 살고 있는
여성, 청소년들의 환경을 그냥 대충 지나갈 수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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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펼쳤는데 1부부터 빡침 ㅋㅋㅋㅋㅋ
왜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하는가 - 가정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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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화가난드아!!!!!!!
왜, 왜!!!!! 망해라 가부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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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화가 많이 나는 것이 단점이지만,
음성지원이 되는 점은 장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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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왠 빨간 얼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