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지만, 디자인을 하기 싫다는 말이 아닙니다. 일은 재미있습니다. 단지 어렴풋이 디자인 세계에 답답함을 느껴 벗어나고 싶은 것 뿐입니다. 이런 상태에 대해 사회학자에게 물으면 마치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것 같은 ‘요즘 시대의 폐색감閉塞感’이라 할 테고, 심리학자에게 물으면 ‘과거의 트라우마’라고 할지 모릅니다. 주변에 털어놓으니 다들 쉬라지만, 원인을 찾아봐도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지면과 광고의 내용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는 ‘요지후지의 작풍’만을 요구했다. 그대로 한다면 아마 1년만 지나도 식상하다는 소리나 듣고 버려질 것이다. 그런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어느 날 나는 선배에게 물었다. “광고회사 아트 디렉터가 그렇게 세세하게 다 정하면 제작사 디자이너는 너무 수동적으로 일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면 아트 디렉터는 더 꼼꼼하게 지시를 내려야 하니 결국 악순환이 계속되잖아요. 디자이너도 각자 아이디어가 있을 테니 더 존중해도 좋지 않을까요?” 선배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서 분페이는 안 되는 거야. 제작사 디자이너는 자신이 그런 디자이너여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거기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취급하면 돼. 나는 내 광고를 만들려고 여기 있는 거니까.”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먼저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문제를 정리해 논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며 지속해서 수정하고 반복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책을 다 읽고 난 뒤 정말 중요한 것을 배운 듯 하면서도 그게 뭔지 잘 파악이 안 될 때가 있다. 게다가 그것을 직접 느끼고 이해할 때까지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읽고 나서 바로 좋다는 생각이 드는 책은,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확인했거나 단순히 도움이 되는 지식을 습득한 경우일 때가 많다.
지금까지 ‘재미있다’든지 ‘즐겁다’는 안다와 동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감탄하는 것을 ‘안다’라고 인색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비난 받으면서도 만화에서처럼 ‘두둥’하고 표현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괴로운 얼굴로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사람은 없다. 내 경험에만 비추어봐도 안다는 것은 분명 더 밝다. 즐겁고 재미있다. 그것이 ‘안다’ 운동의 큰 에너지다.
어쩌면 ‘알기 쉽게 전한다는 것’에는 ‘그 훌륭함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내표되어 있을지 모른다. 어떤 것을 ‘안다’는 말도 달리 표현하면 ‘좋아하게 된다’는 의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