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책갈피의 기분

uragawa 2019. 9. 16. 22:00

언어의 기본 역할은 뜻을 통하게 하는 것이 첫째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나도 일상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대충 말하고 쓴다. 편집자가 대순가, 바빠 죽겠는데.

실장님ㅁ~ 종이 들어갓나여? ㅃㅏ릴빠ㄹ리빨리빨리
대펴님 이거 빨리 확인해주샤야 마감햅니다

편집자가 되어서 저따위로 언어를 파괴한다고 비낸해도 진짜 어쩔 수 없다. 생존형 언어니까.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들 하던데, 그 말에 정말 200퍼센트 공감한다. 책이 좋아서 책 사이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결국 그 책 사이에 끼어 납작한 책갈피의 기분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일을 하면서 가장 날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띄어쓰기’다. 미친 듯이 어려운 건 사실 아닌데 진짜 너무 헷갈리고 애매하다. 이미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시는 문제를 넘어서 ‘찾아보다’는 붙이고 ‘가 보다’는 띄우는 지점이다. ‘멀리멀리’는 붙이고 ‘멀리 멀리서’는 띄운다. ‘며칠간에’는 붙이고 ‘친구 간에’는 띄운다. 미치겠다.



이 자리를 빌려 모든 출판사 대표님과 독자 여러분께 알리고 싶다. 오타는 저절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쇄소와 제본소 그 어디쯤에 사는 오타의 요정이 편집자를 엿 먹이려고 일부러 끼워 넣는다는 사실을. 진짜로, 정말로.



디자이너 : 제목은 유광 금박에 형압을 하면 좋겠어요.
대표 : 그럼 너무 비싸, 안 돼.



고생한 대가로 인센티브나 포상 휴가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 건강을 해쳐가며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일한 결과물을 그 누구도 자랑스럽거나 떳떳하게 여길 수 없었다. 대신 사장님의 차가 바뀌었다.



사각거리는 종이의 질감을 손으로 직접 느끼며 책을 읽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그렇다, 책이 소멸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출판시장은 분명 침체되고 있다. 책을 사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책은 너무 많이 쏟아지고, 우후죽순 출판사가 생겨났다가 또 사라지고, 책 팔아 먹고사는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을 가슴 한구석에 감추고 일을 하고 있다. 작은 출판사들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나쁜 생각을 털어버리려고 애써 고개를 젓는다.



책은 돈이 될 수 없다. 인세는 대부분 정가의 10퍼센트다. 책값이 1만 5000원이면 한 권이 팔릴 때마다 저자는 1500원을 번다. 초판 3000부가 전부 팔리면 450만 원이 된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단기간에 나오는 수익이 아닐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3개월에 걸쳐 초판이 소진되었다면 한 달에 책으로 버는 수입은 150만 원, 5개월에 걸쳤다면 90만 원, 그마저도 잘 팔렸을 때의 이야기지 초판에서 그치는 책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