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uragawa 2019. 9. 11. 22:00

여자 인생 마흔부터잖아? 늦지 않았다고!



“경력이 너무 많네요.”
그사이 내 나이 앞자리는 3에서 4로 바뀌어 있었다. 연차도 연봉도 부담스러운 위치가 돼버린 것이다. 아무리 일 잘하고 커리어가 좋아도 팀장 자리를 누구의 라인도 아닌 나 같은 여자에게 내어줄 곳은 없었다. 조직 내에서 열심히 일하던 여성도 40대가 되면 밀려나는 것이 남성중심적 기업구조다. 조직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는 프리랜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일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능력을 인정받고, 사회적 발언권을 얻었다. 일은 경제적 자립을 넘어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해주었다. 그런 일이 사라진다는 건 내가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야망을 갖고 위로 올라가려는 것은 여성스럽지 않은 것. 그런 여자는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여자. 고로 나는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 여자였다. 이런 생각은 발전을 거듭해 ‘내가 정신적 남자가 아닐까’란 의심까지 하게 만들었다.



여자라고 더 착하거나 도덕적인 존재일까? 아니다. 혹시 그렇게 느껴진다면 그건 여성이 사회적, 육체적 약자로서 권력에 더 잘 순응했기 때문이다. 여자도 얼마든지 부도덕해질 수 있다. 남자만큼 혹은 남자보다 잔인해질 수 있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여성조차도 조직 내 끌어주는 인맥 없이는 장기적으로 배제된다는 사실 역시 당시엔 알지 못했다. 회사 생활을 10년 가까이 했으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자신들의 이익이 걸린 진실의 순간에 ‘보이즈클럽’이 얼마나 똘똘 뭉쳐 그들만의 리그를 지켜내는지도 내 문제가 되기 전까지 몰랐다.
업무 성과는 성공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본부장에 눈에 드는 데는 실패했다. 과거 팀장을 대신해 마음 놓고 부릴 수 있는 새로운 하녀를 원했던 그의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농담처럼 말하지만 내 인생이 추가적으로 피곤한 건 권력자의 눈에 들기보다 이기고 싶어 하는 기질 덕분이다. 기질이란 여간해선 고쳐지지 않고 그걸 숨길 만한 요령도 없었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자, 할 말을 하는 여자, 나아가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 같은 여자에게 남자들은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2년 뒤 다시 인사 시즌이 돌아왔을 때 본부장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주니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던 남자를 정식 팀장으로 올렸다. 그간의 업무 퍼포먼스에 있어서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아직 연차가 낮으니 다시 팀원으로 돌아가 기회를 기다리라고 했다. 팀장에서 다시 팀원이 되라고? 대체 무슨 근거로? 그 남자가 나이가 많고 자식이 있어서? 아니면 내가 하녀가 되기를 거부해서? 그 순간엔 이중 어느 것도 묻지 못했다.



‘곧 결혼할거니까 뭐.’
현재의 미혼 상태가 일시적이라는 생각은 소비를 합리화하고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조사에 의하면 투자를 하는 여성의 비율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다. 남자 입사 동기와 비교했을 때 나의 적립식 펀드 액수도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기본적인 주택청약예금도 들지 않았다. 이거 모아서 얼마 된다고. 곧 결혼할 거니까 뭐.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내가 갖고 싶었던 건 언제나 남편이 아니라 아파트였다고. 이제라도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졌으니 해결책도 분명해진다. 필요한 건 결혼이 아니라 적금이고 펀드고 재테크다. 세대주로서의 감각이다.



10년 넘게 미친 듯이 일하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여자 입사 동기 중 혼자만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느낌은 한두 문장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여성의 승진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에도 결정권자는 그 여성의 자질과 능력을 주위 남자들의 말을 통해 확인하고 싶어 한다. 유능하지만 곁에 두기 불편한 여성보다 좀 부족한 듯해도 ‘아는 동생’에게 기회가 가는 어이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뒷배도 안전망도 없는 ‘바깥’ 생활을 다년간 경험하면서 배운 게 있다. 첫째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외향적, 사교적, 능동적, 긍정적이지 않은 사람은 회사를 관둬선 안 된다는 것과 둘째는 설정 외향적, 사교적, 능동적, 긍정적인 사람이 독립했다 해도 그를 활용한 인맥과 사교만으론 부족하다는 것. 존엄을 지키면서도 확실한 밥줄이 될 수 있는 건 나 자신의 ‘전문성’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남자가 정말 인정하고 정말 사랑하는 건 남자로구나!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그들만의 무리 지어 놀기. 인맥 ‘관리’의 차원이 아닌, 공적 관계를 사전 교류로 전유하기. 이것이 남성 연대의 핵심이었다. 골프장에서, 등산로에서, 3차로 간 술집에서, 사우나에서, 룸살롱에서……. 중요한 회사의 결정은 정작 회사 밖에서, 업무 시간 외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믿었던 ‘합리적 기업’은 이런 결정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여자를 끼워주지 않는다기보다 대등한 경쟁 상대라는 인식조차 없다고 봐야 한다. 그들끼리의 자리 싸움으로 충분하ㅏ고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여자 구성원은 애초에 중요 변수가 아니다.



‘일 줄 때 일 잘하는 사람보다 일하기 편한 사람을 찾는 법이다.’
이제야 오래전 남자 동기가 해준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저 문장은 ‘일 잘하는 여자보다 일하기 편한 남자를 찾는 법이다’로 바꿔도 무방하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나는 개인 플레이를 고수했다. 여성, 남성 어느 쪽도 나의 준거집단이 되지 못했다. 여자들은 조직생활에서 닮지 말아야 할 극복의 대상이었고 남자들은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일을 잘하고 누구도 함부로 대하진 못했지만 끌어주는 선배도, 받쳐주는 후배도 없었다. 내 편이 없는 상태. 무리에서 떨어진 사자는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