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어른 없는 사회

uragawa 2016. 12. 13. 23:24

절망적인 상태에 놓였을 때는, 먼저 내 발아래 유리조각을 주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은 고베 대지진이 일어나고 무너진 대학 건물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쭈그리고 앉아 첫 유리조각을 주우면서 제 스스로 정한 규칙입니다.



자신의 소비 행위에 대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판적인 말을 듣는 것은 현대인에게 가장 참기 힘든 고통 중 하나입니다. 현대인은 자신의 소비 행위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자신의 개성에 관한 평가로 받아들이도록 교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당신이 어떤 상품을 구매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소비자 철학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정체성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어떤 집에 살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차를 타고, 어떤 가구에 둘러싸여 어떤 와인을 마시고, 어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어떤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는가? 그런 소비 행위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됩니다. 그래서 뭔가를 사들일 수 없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입니다. 오랜기간에 걸쳐 현대인은 그렇게 교화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소비 행위에 대해 다른 사람한테서 부정적인 비판을 듣는 경우 이를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입니다. ‘벤츠’는 자신에 대한 자기평가에 근거한 것이며, 가족이나 친척이 말하는 “경차로 족하다”는 것은 나에 대한 외부 평가입니다. 우리는 그 차이를 단순히 자신의 경제 상태에 대한 평가로 여기지 않고 인간으로서 열등하다는 선고로 받아들여 그 말에 인격적인 상처를 입습니다.



지금 사회는 젊은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나답게 살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풍요롭지도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들은 서로에게 폐를 끼치거나 방해가 되기도 하면서 그럼에도 유쾌하게 살아가는 노하우를 몸에 익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든지 돈으로 살 수 있는 사회라는 건, 달리 말하면 돈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사회라는 말입니다. 제 몸을 혹사시키는 저임금 노동을 견뎌낸 대가로 얻은 적은 소득으로 ‘가족과 이웃이 해 주는 서비스’를 상품으로 사서 제 몸을 건사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직접 가족과 이웃이 해 주는 일을 서로서로 융통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겠지요.



연수입은 인간성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일 년에 돈을 얼마나 버는지보다 어떤 목소리로 말하는지, 어떤 표정으로 웃는지 그런 쪽이 그 사람의 인물됨을 판단하는 데 훨씬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연수입을 그 사람의 발언 내용의 진위와 연결지으려는 태도가 점점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신문을 읽다가 유난히 강한 위화감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돈이 없고 사회적 지위를 잃어 체면을 잃었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거나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사건의 동기로 충분하다는 식의 보도 태도를 보게 될 때 입니다. 돈이 없는 인간은 거의 인간이 아니므로 ‘이런 짓’을 하는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기사의 행간에서 읽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노력했는데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뭐라고 할까, 부하들 대부분은 내심 그렇게 느낍니다. ‘대장이 시키는 일은 몸이 부서지도록 열심히 했다’고 느끼는 건 ‘가마를 멘’ 인간들이 갖는 주관적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보스와 부하 관계에서는 원리적으로 노력과 보상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일본 사회에는 젊은 사람들의 성속(숙)을 지원하겠다는 발상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막 취업한 젊은 노동자는 그저 기업에 수익을 가져다 주는 소모품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비인간적인 고용 환경에 투입되어 심신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일을 하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그대로 해고됩니다.



“모두가 같은 것을 욕망하니까 쟁탈전을 공정하게 하자”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인류학점 관점에서 보자면 ‘자살 행위’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류가 수만 년에 걸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것을 욕망하도록 구조를 만들어 ‘쟁탈전’을 피할 수 있을지 지혜를 짜내 왔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가는 사람을 뒤따라가려는 젊은이들은 이제 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 높이 올라가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발상을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모두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선배를 따라가는 것도 되도록 여럿이 함께 가는 편이 혼자만 가는 것보다 안심할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맡을 사람은 ‘앞선 세대의 성공 사례를 성실히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앞선세대의 실패에서 배우는 사람들’로 부터 나옵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결정을 하지 않은’ 사람들 입니다. 자신을 내려 놓고 정해진 진로를 조용히 따르면서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여 성공했습니다. 그들의 성공 비결을 자기 이익이나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충실하게 연기해 온 것입니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고 배우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사회적 상승의 기회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