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야간시력

uragawa 2016. 12. 27. 20:12

누구든 장점이 있다. 누구든 재능이 있다. 누구든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 인간들은 바로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썩어빠진 개인이란 존재하고, 나도 그 중 하나라는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상황에선 정신이 나갈 정도까지 심술궂게 바뀔 수 있는 썩어빠진 개인.



넬리를 괴롭히면서 나는 절박감과 쾌감을 느낀다. 죄책감과 우월감의 행복한 혼합물. 그리고 내몸속을 뜨겁게 질주하는 아드레날린. 넬리 프리이스의 귀 뒤를 꼬집고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 멍을 내면, 나 자신의 꽉 막혔던 좌절, 나 자신의 공포와 슬픔이 상처에서 짜낸 고름처럼 내 몸에서 빠져나간다.
이 세상은 얼마나 거대한 황무지 인지.

우리가 그렇게 늙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건 얼마나 큰 불운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부분 바라만 보는 것뿐이에요.” 나는 인정했다. “그리고 약간 꿈을 꾸죠. 꿈은 공짜니까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완전히 하찮은 존재였다. 쳐다볼 것도 없고, 대체로 세계에 별 의미도 없고, 쉽사리 잊히는 존재. 애달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사람들이 몸을 돌려 내가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를 원했고, 나를 기억해 주고 존중을 담아 내 얘기를 하기를 바랐다. 이런 갈망은 점점 커져 내 가슴과 머리를 채웠다.



“우리 인간은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문제라면 대부분 일에 변명을 찾아내곤 하지. 그게 우리가 사는 방식이오. 그밖에 이것저것.”



나는 검은 흙덩이를 들여다보았다. 언젠가는 나 또한 땅 속 구멍에 눞게 되겠지. 하지만 그날이 올 때 이런저런 일을 처리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아마도 지루한 사회복지사 몇 정도. 장례식은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가지 않고 쉬쉬 치러지리라. 갑자기 내 죽음이 임박했다는 생각을 하니 한 없이 우울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데요?” 안나는 궁금해했다.
“죽음에 대해서요.” 나는대답했다. “항상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죠. 내 자신의 죽음이라든가 다른 사람의 죽음이라든가. 어쩔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종종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죠. 명랑하고 자신 있는 태도로 이런 말을 하면서 무척 현명하고 멀리까지 내다보는 척하죠. 당연히 죽음이 평화로운 사건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조용히 평온하게 침대에서 죽어 갈 거라고, 심지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죠. 그 사람들은 죽음이 끔찍하고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해요. 지옥 같고, 오래 질질 끄는 고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나 그렇게 죽는다고 생각하죠. 내 차례가 오면 난리를 치진 말아야지. 하지만 우린 그렇게 해요. 난리를 피우죠.”



“전 어쨌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그 안에 남은 빛의 잔해처럼 보이죠. 그래서 모든 것의 윤곽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칠흑같이 깜깜할 때도요. 또한 표면과 공간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황색으로 요동치거든요. 제겐 항상 이런 능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순 없었죠.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수용체가 더 많은지도 모릅니다. 이런 식으로 말해 보죠. 난 항상 내 자신이 약간 다르고 특이하다고 느꼈다고.”



나는 침대에 눞는다. 창가에 앉는다. 감방 안을 어슬렁거린다. 짧은 보폭으로, 닳아빠진 회색 바닥 위를 왔다 갔다 한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복수를 생각한다. 복수는 내 발밑 아래에서 싹이 터, 위로 오르며 내 몸속 기관 안으로 파고든다. 이따금 숨쉬기가 힘들다. 복수심이 철저히 나를 함락시켰기에. 내게 치명타를 날린 불행의 대가를 누군가에게 치르게 할 계획을 세운다. 진짜 용의자는 어딘가에 앉아 두 손을 문지르고 있겠지. 참을 수가 없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만약 당신이 아프거나 병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거나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요? 그럼 어떻게 버틸 겁니까?”
“아주 힘들겠죠.” 나는 인정했다. “다른 사람을 경멸하듯 나 자신을 경멸하게 될 겁니다. 엉망이 되어 나락으로 떨어지겠죠. 그래서 아침에는 다시 일어나지도 못하고 다시는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 볼 수도 없을 겁니다. 절대로!”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이것도 일종의 운동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집중하고 흡수하는 것.



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와서 무덤을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늘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마가레트를 찾아냈다. 분명히 그녀는 와 줄 거야,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