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무너진 세상에서

uragawa 2016. 12. 8. 22:25

조의 가장 깊은 비밀 중 하나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혼자가 두렵지는 않았다. 사실 좋아하기도 했으나, 그가 만들어낸 고독이란 늘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깨질 수 있는 종류였다. 그는 고독을 일과 자선과 양육으로 에워싸고 또 통제했다.
어렸을 때는 고독을 통제하지 못했다. 고독은 아이러니와 함께 그를 속였다. 그리하여 외로운 아이로 자라면서도 옆방에 크게 믿을만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엄마 생각하는 구나.”
“어떻게 알아요?”
“얼굴에 적혀 있어.”
“얼굴에요?”
“그래, 마음의 얼굴.”



“제길, 갱이라서 지랄염병하게 좋습니다.”
조가 가볍게 키득거렸다.
“왜 웃어요?”
“아무것도 아니다.”
“아뇨, 말해 주세요.”
조가 리코를 보았다.
“나도 지랄염병하게 좋아하거든.”



“내가 유령을 믿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네. 따분하거든.”
“예?”
“따분해. 유령이 되면 따분하다고. 그래서? 어떻게 시간을 때우겠나? 새벽 3시에 낯선 곳을 떠돌고 고양이나 아가씨를 기절초풍하게 만들고 벽 속으로 사라진다고 쳐.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기껏해야 1분? 그럼 나머지 시간은 뭐 하지? 말했듯이, 유령을 믿으면 내세도 믿어야 해. 당연하지, 둘은 같이 가니까. 내세가 없으면 유령도 없고, 우린 그저 썩은 고기에 구더기 먹이일 뿐이라네. 하지만 유령이 있고 내세가 있으면 영적 세계도 있어야 하는데, 영적 세계는 천국이든 연옥이든, 그곳이 어디든 간에,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자네가 집에 돌아오면 빤히 쳐다보며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다는 재미있어야 하지 않겠어?”



죄가 정말로 크다면 죄의식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커진다. 또 다른 형태로 진화할 때도 있다. 이따금 불법이 불법을 낳고, 그 일이 빈번해지면, 우주의 구조를 위협하고, 결국 우주는 물러나고 만다.



죽음이라면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대충 계산해 봐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물여덟 명을 죽였다. 수아송에서 4일간의 혈전 동안 그의 총알과 다른 전우들의 총알을 따져본다면, 어쩌면 쉰 명까지 될 수도 있다. 그의 뺨과 코로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호흡을 느낀 것만 대여섯 번이었고, 사람의 눈에서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과정을 지켜본 것만 열두 번이 넘었다. 아내의 마지막 눈빛도 참아냈다.
그런데도 죽음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죽음이 두다는 것 뿐이었다. 이 세상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징후는 전혀 보지 못했다. 죽어가는 사람의 눈이 평온해지는 것도, 평생의 의문에 대해 대답을 얻었다는 식의 안도감도 없이 그저 마지막뿐이었다.



“바다를 보면 그 너머에 뭐가 있든 틀림없이 더 나은 세상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지. 나를 환영하고 인간 대접을 해줄 곳이 잇을 거라고 말이야.”



토머스는 카민의 얘기를 외면했다. 남의 얘기를 잘 들으면, 정말로 잘 들으면, 그 사람의 존경과 감사를 얻을 수 있단다. 아버지는 그렇게 얘기했다. 그리고 모두들 재미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지. “사람들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이 봐주기를 바란단다.” 하지만 상대방이 멍청이거나 대화에 젬병일 경우라면 그저 듣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아버지 반만이라도 닮고 싶었지만 이따금 아버지도 틀릴 때가 있었다. 바보들의 얘기를 참고 들어줘야 할 때는 솔직히 누가 옳은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둘다 옳은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아. 난 알아. 살면서 후회를 하는 이유는 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행하지 않기 때문이야. 상자를 열지 않고 모험을 하지 않기 떄문이야. 지금부터 10년 후, 애틀랜타의 어느 거실에 앉아 오늘을 회상하며 ‘그때 비행기에 탔어야 했어.’라고 후회하고 싶어? 그러지 마. 이곳엔 당신한테 아무것도 남지 않았잖아. 저 밖엔 온 세상이 기다리고 있고.”



“그래도 괜찮아. 그렇게 꼬여야 삶이 재미있잖아. 여자, 웃음, 도박, 느긋한 휴가……. 다 재미는 있지만 별로 부질없는 거야. 하지만 이렇게 꼬이면…… 그래, 내가 살아 있구나 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단다. 지금은 아주 많이 꼬인 셈이지. 네 아버지한테 나를 빼낼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라도 떠나야 하는 거야. 영원히.”



영화에서 캐그니나 애드워드 G가 총을 쏘면, 상대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얌전히 쓰러져 죽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배에 총을 맞은 사람들도 한 손을 내밀어 허공을 할퀴거나 바닥을 걷어찼으며, 어머니나 아버지, 신 따위를 부르며 비명을 질렀다. 그냥 죽는 놈은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