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13.67

uragawa 2016. 11. 16. 22:30

뤄 독찰의 이런 생각은 관전둬에게서 물려받았다. 관전둬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범인을 지목하는 것이 뭐가 어렵겠나? 어려운 것은 범인이 아무 말 못하고 죄를 인정하도록 만드는 거라네.”
-1장_ 흑과 백 사이의 진실 中




“조급해하지 마. 이제 막 작은 분대 지휘관이 된 것 뿐이잖나. 천천히 배우고 적응하면 돼. 부하들에게 자네가 힘들어하는 걸 보여줘선 안돼. 윗사람조차 믿음이 없으면 부하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거든.” 관전둬는 제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게다가 대어를 낚으려면 인내심이 있어야 해. 지금은 미끼를 물 기미가 보이지 않겠지만 묵묵히 수면의 변화를 주시하며 기다리는 거야.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기회를 잡아채기 위해서.”
-2장_ 죄수의 도의 中




어쩌면 세상일이란 전부 정해진 운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시작과 끝이 모두 보통 사람은 꿰뚫어볼 수 없는 우연의 일치로 이뤄진다면, 시간의 도도한 물줄기 속에서 인간은 작디작은 모래알과 같은 존재로 무력하게 시대의 흐름을 따라 흘러갈 뿐이다.



“샤오밍, 탈옥 역시 살인과 똑같아. 사실은 아주 간단한 거지.” 관전둬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누군가를 죽이려면 총알 하나만 쏘거나 칼로 가볍게 베기만 해도 돼. 탈옥도 마찬가지지. 인력과 물자가 충분하다면 아무리 삼엄한 감옥이라도 감옥 벽에 구멍을 뚫어서 죄수를 데리고 나갈 수도 있어. 이런 범죄의 어려운 부분은 ‘과정’이 아니라 ‘끝’이지. 사람을 죽인 뒤 어떻게 경찰의 눈을 피할 것인가? 탈옥 후 어떻게 경찰의 추적을 피할 것인가? 이것이 살인과 탈옥의 어려운 원인이야.”
-3장_ 가장 긴 하루 中




조직의 일원이 되면 정직했던 사람도 결국에는 똑같아진다. 홍콩경찰에는 이런 말이 있다. ‘뇌물을 받는 것’은 자동차와 같다. 소속 분대가 뇌물을 챙겼을 때 ‘차에 올라타면’ 그 돈을 나눠 받는다. 부패에 동참하기 싫어서 돈을 나눠 받지 않더라도 입을 다물어주면 ‘차를 따라 달리는’ 것이다.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우긴다면 ‘차 앞에 서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은 자동차에 부딪혀 다친다. 힘이 없는 누군가가 이 자동차를 멈추려고 한다면, 직접적으로 보복을 당하지는 않더라도 대부분은 조직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고립되며 승진의 기회는 기대할 수도 없게 된다.



홍콩경찰조직에서는 보고서를 모두 영어로 써야 한다. 그래서 경찰관은 어느 정도의 영어 수준이 요구된다. 그러나 실제로 영어를 잘 못하는 경찰도 많았다. 경찰 내부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영어를 못하는 교통경찰이 사고 보고서를 쓰는데 두 차가 충돌한 과정을 이렇게 서술했다고 한다. One car come, one car go, two car kiss.
-5장_ 빌려온 공간 中




이 시대는 이렇게나 괴상했다. 나는 매일 형과 내가 어디선가 폭탄이 터져 죽을까 걱정하고, 치안은 나날이 나빠지고, 정부는 전복될 위기였으며, 사회는 마비되었고, 도시는 전쟁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매일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집주인 아저씨를 대신해 가게를 보고, ‘좌파 폭도’ 이웃과 아침인사를 나눈 다음 ‘파시스트’ 경찰에게 음료를 판매한다. 라디오에서는 좌파가 사회의 안녕을 해친다고 침 튀기며 욕을 해댄다. 친중국 신문사는 영국과 홍콩의 군대, 경찰들이 애국 조직을 박해한다고 통절하게 비판한다. 양측은 모두 자신들이 정의라고 주장하는데 민중들은 속수무책으로 강권과 폭력에 유린당하고 있을 뿐이다.



“혁명은 식사에 초대하는 것이 아니다. 죽는 사람은 언제나 생긴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즈창, 지도자분들의 지시를 잊은 겁니까? 시민 몇 명이 희생된다고 해도 영국 제국주의 놈들의 항복과 맞바꾼다면 그들의 죽음은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억울하게 개죽음 당한 게 아니라 피와 땀으로 조국에 승리를 안겨주는 거지요. 동포를 위해, 국가를 위해 죽는 순국인 겁니다!”



권력이란 원래 이런 것이다. 높은 사람은 이상과 신념, 재물로 유혹해 아랫사람이 목숨도 바치게 만든다. 인간은 위대한 목표를 위해서 사는 것보다 평온한 생활을 추구한다. 충분한 이유만 주어지면 기꺼이 노예나 종이 된다. 만약 내가 쑤쑹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그는 나에게 파시스트의 독에 물들었다고 열변을 토할것이다. 위대한 당과 조국은 절대 그들과 같은 애국동포를 버리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기를 해도 좋다. 그들과 같은 보잘것없는 역할의 사람들은 그저 잊힐 뿐이다. 토사구팽, 토끼사냥이 끝나면 개를 삶아먹는 것은 천고불면의 이치다.
-6장_ 빌려온 시간 中








2016/04/14 - [△텅빈도서관] - 기억나지 않음, 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