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를 마친 다시로 씨는 옆에 있는 바둑실로 갔다. 그러나 상대가 없어 바둑을 둘 수가 없었다. 고령자 몇 명이 바둑을 즐기고 있었지만 다시로 씨는 그 사이에 끼려고 하지 않고 바둑실 안쪽에 있는 책장으로 향했다. 소설과 기행문 등이 꽂혀 있는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더니 의자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결혼식에 가면 축의금을 내야 하지 않습니까? 장례식에 가면 조의금을 내야 하지 않습니까? 돈이 없으면 사람들과 교류할 수 없습니다.”
친구들과의 식사 모임에도 참가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하고, 슬프고, 비참했다. 돈이 없기 때문에 친구라는 ‘유대’가 단절된 것이다.
“이제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다고 생각하면 죽고 싶어질 때도 있지요. 왕진을 하러 오신 의사 선생님한테 이렇게 걷지 못하는 몸이 되다니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기쿠치 씨의 방은 2층이어서 뛰어내리셔도 안 죽어요’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서 서로 한참 웃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저를 격려해 주시기는 했지만, 죽고 싶다는 건 제 솔직한 본심이었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밖으로 나가 자유롭게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싶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것은 이제 기쿠치 씨에게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다.
아들이 건강했던 시절, 기쿠치 씨에게 노후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혹시 상황이 안 좋아지더라도 아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도 없이 소중한 아들의 죽음은 노후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기도 했다.
‘사치는 죄악’이라는 듯이 지출을 아끼며 참고 산다. 생활보호를 받는 것은 ‘나라에 신세를 지는 것’이라 죄책감을 느낀다고 호소하는 목소리도 많다.
이렇게 필사적으로 사는 사이에 결혼도 하지 않은 채로 나이를 먹게 된 와타나베 씨는 어느 날 혼자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각오를 굳혔다. 그리고 일에 몰두하며 앞만 보고 달려가다 심부전 발작으로 쓰러졌다.
가족이나 친구가 있으면 앞으로의 치료 방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연명 치료를 받는다는 선택지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목숨을 구하면 자신이 살아 있음을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가족도 친구도 없고 신병 인수인이 되어줄 사람도 없는 환자, 목숨을 건지더라도 돌아갈 곳이 없는 환자가 의식도 없이 호흡기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생명을 구한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있다는 말이었다.
“노후에 살 곳이 없어서 고생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케다 씨는 허망하게 말했다. 오늘날은 병이나 부상 등을 계기로 노후파산에 처하면 내일 머물 곳을 찾아서 ‘표류’해야 하는 시대다.
사와다 씨는 어머니와 살아온 집을 팔기로 했다. 노후화된 집이어서 그리 큰돈은 되지 않았지만, 예금이 생긴 사와다 씨는 이사할 임대주택을 물색했다. 그러나 그 임대주택도 찾을 수가 없었다. 유일한 친족이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신원 보증인을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이 공멸하는 새로운 노후파산이 잇따르는 데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 그중 하나는 ‘고용’이라는 사회를 지탱하는 토대가 흔들리면서 미래에 대비할 여력이 없는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구조적인 요인이다. 또한 ‘가족’의 형태가 변하면서 서로를 지탱하는 힘(유대)가 약해지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리라. 사회 보장 제도가 이런 ‘초고령사회’의 실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이런 현상을 가속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