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말벌

uragawa 2016. 3. 31. 21:39

붕붕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시끄럽게 날아다니는 모습은 예전에 깐족거리며 나를 야단치던 과장을 연상시켰다. 안자이. 당신, 일할 마음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엉? 대체 무슨 생각이야?

내가 웬만해선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이제 도저히 못 참겠어. 영업일지는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지금까지는 자네를 생각해서 위에 보고하지 않았는데, 더 이상은 안돼.

우리 회사가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 있는 줄 알아?




살고 싶으면 싸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아니, 잠깐만. 그것이야 말로 안자이 도모야 작품의 영원한 주제가 아닌가.

인생이란 싸움의 연속이다. 싸움을 포기한 자는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안자이, 당신은 회사의 집이자 밥벌레야.

일할 마음이 있긴 한 거야? 동료들이 매일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며 열심히 일하는 걸 보면서 아무 생각도 안 들어?

애초에 정신머리가 글러먹었어. 근성도 부족하고 끈기도 없고 말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상품을 팔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없다니까.

제발 정신 좀 차려. 밥값은 해야 될 거 아니야. 하루 종일 흐리멍덩한 얼굴로 축 처져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봐!

여기서 안 되는 녀석은 어디에 가도 안 돼. 여기서 버티지 못하는 녀석은 평생 어디를 가도 못 버틴다고!




그렇다. 너라면 할 수 있다. 힘을 내라!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어라. 사람은 죽었다고 생각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자신도 목숨을 걸고 몸으로 부딪치겠다는 기백이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안이한 생각은 결국 최후의 순간에 자신에게 치명타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남을 떨어뜨리기 위해 깎아지른 절벽으로 유인하는 자는 자기 자신 역시 떨어질 운명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은 한 번밖에 살 수 없어. 말벌도 자유롭게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면 되지 않을까? 자신이 날고 싶은 곳을 향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