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교장

uragawa 2015. 6. 8. 23:30

불안하다. 저 남자가 옆에 있으면 사소한 것도 실수라고 질책당할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기미치카’라는 이름에서 ‘기미지카 성미가급하다는 뜻’라는 단어가 연상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 1 화 불심검문 中



인테리어 일로 숙달된 구스모토의 눈은 아무리 미묘한 색상 차이라도 구분할 수 있다. 달아난 차와 기시카와의 차, 두 대는 완벽하게 똑같은 색이다.

-제 2 화 고문 中



학생들의 일기를 훑어보는 사람은 담임만이 아니었다. 교관들도 돌려본다. 누구 눈에 들어갈지 모르니 어설픈 소리를 쓸 수 없다. 두 번 점검한 뒤에 지우개를 들었다.‘각오’는 ‘다짐’이라고 고치는 게 맞겠다. 게다가 지문은 ‘채집’이 아니라 ‘채취’가 맞다. 큰일날 뻔했다. 오탈자가 있으면 한 군데 틀릴 때마다 팔굽혀펴기 스무 번의 벌을 받는다.

단어도 그렇지만 물론 내용도 허투루 쓸 수 없다. 일기에는 사실만 써야 한다. 만일 잘못된 기술이 있다면 팔굽혀펴기로 끝나지 않는다. 밤새도록 기숙사 복도에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주눅들 필요는 없어. 수업은 즐겨야지. 과녁보다 사람 얼굴을 잘 보는 거야. 자동차 핸들을 쥐면 성격이 바뀐다는 얘기 많이 들었지? 권총도 마찬가지거든.”

-제 3 화 개미구멍 中



오자키는 한심하다는 듯이 손을 까딱까딱 저었다.

“집단의 광기는 무서운 거야. 미묘한 알리바이는 도움이 안 돼.”

“무슨 뜻 입니까?”

“학교 측의 단속이 계속되면 조만간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아? 학생들끼리 범인을 찾아내기 시작할 거야. 조금이라도 수상한 놈이 있으면 걷어차고, 패고, 린치나 다름없는 수법을 동원해서라고 그놈한테서 자백을 받아내고, 출두시킬 테지. 소위 말하는 희생양 이라는 거야. 그렇게 최대한 빨리 문제를 정리하려 들지. 진짜라니까, 내가 학생일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 전부 학교 측이 원하는 바야. 그렇게 수평 관계의 동료보다 수직 관계의 조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만드는 거지.”

-제 4 화 조달 中



지금,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나를 항상 그늘에서 지탱해준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뭔가 하면, 내 스스로 적은 한 통의 ‘퇴학신청서’이다.

사실은 6월에 경찰의 길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사건을 경험했다. 그때 쓴 것이다. 하지만 신청서를 제출하는 단계에서 갑자기 망설여졌다. 흔히 듣는 이야기지만 어떤 사람이 자살하려고 독약을 손에 넣은 경우, ‘이게 있으면 언제든 죽을 수 있으니 조금만 더 살아볼까’ 하고 결국 자살 충동에서 벗어나는 일이 왕왕 있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언제든 그만둘 수 있으니까’라고 생각하고 신청서는 일단 거두었다. 대신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고 늘 지니고 다녔다. 그렇게 하고 수업을 받아보니 사고의 전환이 갖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지금까지 머릿속을 맴돌던 집착이 사라지고, 배우는 것 하나하나가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려워도 진지하게 임할 수 있었다.



“제일선에 나갈 날이 기대된다, 졸업일이 기다려진다, 빨리 현장에서 실적을 쌓고 싶다……. 그런 말로 끝을 맺는 학생은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해. 부족한 자신감이 부담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지. 반대로 정말로 성장한 사람의 글은 담담하게 에피소드를 기술하고는 그걸로 끝이지.”



불심검문을 할 때 중요하지만 종종 놓치기 쉬운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상대가 경찰관을 만났을 때 처음 보이는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 반응이 마음속에 켕기는 구석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때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상대에게 이쪽의 존재를 알린 뒤에 불심검문을 시작하는 건 능숙한 수법이라고 할 수 없다. 

-제 5 화 배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