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안구기담

uragawa 2014. 12. 2. 22:42

높이도 폭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검은 벽이 눈앞에 가로막혀 있는 느낌이었다. 고통스럽거나 슬픈 차원을 넘어 나를 둘러싼 이 세계 자체가 절망의 상징처럼 보였다.

-재생 中

 

 

 

“이봐, 그딴 하찮은 선입관은 버려. 애초에 당신한테는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를 이성적으로 상대화해서 파악하는 관점이 결여되어 있어. 안타까운 일이야. 아주 안타까운 일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럼 묻겠는데, 당신은 문어나 오징어는 거부감 없이 입에 넣을 거야. 그렇지? 해삼이나 갯가재도 좋아하고, 회나 낫토도 맛있게 먹지? 그런데 예를 들어 텍사스 시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눈에 그게 얼마나 혐오스러운 행위로 보일지 생각해봤어? 그들이 보기에 일본인은 야만적인 음식 문화를 가진 집단으로 보일거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뱀은 싫어. 골 요리도 싫고, 참새 통구이 같은 것도 징그러워서 못 먹는단 말이야.”

“가슴 아프군. 당신은 세상의 편견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어.”

 

 

 

“세상 이치는 그렇다고 해도 ‘인간을 먹는다’는  행위 그 자체는 결코 깊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이 지구상의 모든 동물은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잡어먹습니다.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인 것이죠. 가축이나 물고기를 먹는 것도 채소나 과일을 먹는 것도 뱀이나 벌레나 기생충을 먹는 것도 결국에는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권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소나 돼지는 태초부터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창조된 것이다. 그러니 먹어도 괜찮다, 라고요. 다른 생명을 먹는 행위가 죄악으로 느껴지니까 그런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정당화하려고 한 것일까요? 여러가지로 까다로운 이야기입니다.”

-특별 요리 中

 

 

 

 

많은 사람들이 모여 모임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익을수록 그 안의 나는 점점 더 고독해진다. 분위기에 맞춰 함께 웃다가도 문득문득 타인의 그리고 자신의 비겁한 점들이 눈에 보여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음 둘 곳이 없어진다고 할까? 아마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생일 선물 中

 

 

 

기분 나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교단에 서면서 죽인 자의 안구를 은밀하게 수집하는 과학 교사. 그 광기 어린 마음속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었을까?

불쾌감과 혐오감을 느끼는 한편으로 안구라는 것은 인간의 육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관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과연 나는 태어날 내 아이를 남들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나는 잘 모르겠다.

가령 지금 당신은 아내를 사랑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죽은 부모를 사랑했느냐고 물으면……?

-안구 기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