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시리얼리스트 연재물을 쓰는 작가

uragawa 2014. 6. 25. 23:30

소설은 첫 문장이 가장 중요하다. 어쩌면 마지막 문장은 별개일 수도 있겠다. 복도를 걸을 때 등 뒤에서 닫히는 문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소설을 덮었을 때 독자의 마음에 여운을 남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소설을 다 읽었기 때문에 뭔가를 해보기에는 너무 늦은 셈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서점에서 새로운 책을 집어들 때마다 책장을 급히 넘겨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기 위해 안달하곤 했다.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야만 했다. 선물 포장을 급히 벗기거나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도 손가락 틈으로 공포영화를 끝까지 보는 것 같은 어린애 같은 충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보고 싶지도 않고 보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도 사람은 자신을 두렵게 하는 것을 엿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최근에는 뱀파이어물에 손을 대고 있는데 잠정적으로 가장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장르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뱀파이어 마니아들은 서점을 점령하고 있었다. 반스앤노블에 가면 몇 미터씩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유? 나는 잘 모르겠다. 고스, 호러, 산업 클럽문화 같은 게 엉망으로 뒤섞인 최신 유행과 관련 있는 게 아닐까? 아무튼 여기저기에 피어싱을 하고 시커먼 옷을 걸치고 스타킹을 신은 그것들과 나의 에로틱한 재능이 절묘하게 만난 셈이었다. 순수한 문학이 그리웠지만 생계를 생각하면 변태들과 멍청이들을 위한 글을 쓰기 위해 재능을 쥐어짤 수밖에 었었다. 책은 하나의 숭배 대상이 됐고 오직 숭배자들만이 책을 읽기 때문이었다.

 

 

 

“더는 함께하진 않을 거야. 더는 너와 지내지 않을 거라고.”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제인은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상처를 입힌 건 그녀인데도 왜 자기가 울고, 나는 마치 상처를 준 사람처럼 무뚝뚝하게 쳐다봐야만 하는 걸까? 커다란 눈물 한 방울이 《홉스카치》위로 떨어졌다. 49페이지였다. 눈물이 말랐을 때 그 페이지가 약간 우그러들었고, 몇 번이나 그걸 들여다봤기 때문에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탁자 앞에 앉았다. 방금 도착했지만 사교성을 유지하느라 기진맥진했고, 억지로 미소 짓는 바람에 얼굴 근육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모건이 주방에 간 틈에 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는 좌절감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꼈다. 소개팅에서 폭탄을 만났을 때 첫 오 분 동안의 감정이나 토끼가 덫에 걸렸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테레사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노란색 포스트잇이 빽빽이 붙어 있는 두터운 법전을 꺼냈다. 안경집을 열더니 안경을 꺼내 코에 걸쳤다. 나는 섹시한 사서 타입 여자에게 항상 끌렸다. 책을 읽는 여자보다 더 매혹적인 존재가 있을까?

 

 

 

음침한 스릴과 비밀스러운 떨림을 위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걱정할 필요 없다. 다들 그러니까. 그리고 나는 그런 걸로 여러분을 판단할 생각도 없다. 페이지에 가득한 피투성이 장면을 읽고 움찔하며 시선을 돌리는 심약한 영혼이라면 역시 걱정할 필요 없다. 당신들만 그런 게 아니다. 내 말을 믿어도 좋다. 만약 그런 걸 더는 읽지 못할 것 같으면 두 눈을 감고 한 손으로 그 장면을 한번 써봐라. 바로 그 순간, 마음속에서 잠들어 있던 시인이 꿈틀거리며 일어나 젓가락을 쪽쪽 빨아댈 것이다. 연필을 뾰족하게 깎으며 대박을 기다리는 글쟁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 가지 계율이 있다. 독자들 아니 네 자신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면, 물러서지 말고 더 화끈하게 써라.

 

 

 

버스를 타니 왠지 쓸쓸했다. 운전기사 바로 뒷자석에 앉아 유리창에 이마를 살며시 기댔다. 브레이크가 풀리며 울컥하고 버스가 움직였다. 창밖은 축축했고, 모든게 반짝거렸다. 나뭇잎 여러 장이 바람에 날려 도시를 빠져나가는 버스에 무임승차라도 하듯 유리창에 달라붙었다. 밝고 깨끗한 차체에 묻은 물방울들은 피부에 돋은 소름처럼 보였다.

 

 

 

우린 왜 읽을까? 책을 처음 접했던 어린 시절, 왜 우리가 사랑하는 그 책들에 빠지게 된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독서는 우리가 소유한 것 같은 꿈속으로 날아가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또 많진 않지만 지루함과 불행, 외로움 같은 우리가 더는 견딜 수 없는 장소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는 탈출구가 돼주기도 한다. 내가 글을 읽을 때면 책장 속의 단어들이 내 머릿속의 목소리를 대신했고, 아주 잠깐이기는 하지만 내가 되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멈출 수 있었다. 진짜 독서가들, 마니아들은 마약 중독자가 황홀함에 빠지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 받는 대상을 숭배하는 것처럼 허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이다. 읽는 데 이유 따위는 없다.

 

 

 

욕망은 법률에 규정되어 있지도 않고 누구도 복종시킬 수 없다. 아니 정반대일지도 모른다. 욕망이야말로 다른 모든 법률을 무효로 돌리는 궁극적인 법률일지도 모른다.

 

 

 

드디어 내가 항상 쓰기 두려워하는, 플롯이 서로 맞물리며 저절로 해소되는 부분에 도착했다. 클라이맥스니 절정이라고 부르는 부분이다. 연극이라면 3막에 해당하는 부분. 힘들지만 생색은 낼 수 없는 그런 부분. 소설의 플롯을 구성하는 건 배관 작업과 같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까지는 아무도 그걸 모르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때 사람들은 모두 비평가가 된다. 하지마 잠시만 생각해보라. 객곽적인 독자의 눈앞에, 당신의 실제 생활이 어떻게든 옮겨져 활자화돼 놓였을 때 얼마나 비현실적이겠는가. 또 감추어진 비밀과 숨겨진 비밀들은 얼마나 빤히 들여다보이겠는가.

 

 

 

나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세상을 상상하며 잠깐 동안 천재가 된 기분을 만끽한다. 물론 우린 암울하고 해결 곤란한 문제가 쌓인 하나의 세상만을 가지고 있다. 너무나 깊숙이 들여다보고 찾아낸 진실은 아름답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책에서는 우리 모두가 두려움을 모르는 탐구자이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곧이 곧대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

 

 

 

“비미슈 박사님, 희망이라는 게 손톱만큼도 없는 건가요?” 폴리포니가 물었다.

비미슈 박사는 파이프를 뻑뻑 피워대며 기다랗게 자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아가씨, 나름 명성이 있는 기상학자인 내가 현명한 인간인 카프카의 말을 인용해서 말하겠는데, 당연히 희망이, 무한한 희망이 있죠.”

 

 

 

나는 앞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자렐 부인의 머리숱이 줄었다. 자렐 씨의 양복 어깨에 비듬이 떨어져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 두 가지의 사소한 일들은 날 정말 슬프게 했다.

 

 

 

“끝내줄 거라고 생각해요. 내 말은, 아주 멋진 출발이잖아요? 그게 어렵지 않나요? 소설의 첫 부분.”

“꼭 그런건 아니에요.”

“그럼 마지막 부분?”

“시작도 끝도 아니에요. 소설은 현실 생활과 똑같아요. 가장 어려운 부분은 중간이죠.”

 

 

 

삶은, 스릴러의 클라이맥스든 대부분 문학 작품을 구성하는 3막짜리 플롯이든 간에 그것을 능가한다. 살면서 겪는 실재 위험과 손해는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나온다. 우리의 현재는 절대적으로 불확실 하고, 각각의 순간은 유일하며 반복될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언젠가 끝이 날 거라는 사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