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롱 굿바이

uragawa 2014. 6. 18. 23:44

그는 흘낏 나를 보더니 다시 비에 젖은 차도로 시선을 돌렸다. 두 개의 와이퍼가 앞 유리를 조용한 소리를 내면서 닦고 있었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

“미안해. 쓸데없는 말을 해서.”

“돈은 얼마든지 있네. 누가 행복해지고 싶댔어?”

그의 말에 나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비웃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술에 취하고, 굶주리고,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으면서도 긍지를 지니고 있는 그가 좋았다. 아니, 정말 그랬을까? 단지 우월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죽은 인간만큼 말썽을 피우지 않는 존재는 없다. 무슨 말을 들어도 항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웨이드 부인, 나의 의견 같은 것은 아무 뜻도 없습니다.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듯한 인간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런 범죄를 범하고 있지요. 마음씨 좋은 할머니가 가족 전부를 독살하기도 하고, 온순한 아이가 강도질을 하거나 사람을 쏘거나 합니다. 20년 동안 성실하게 근무하던 은행 지배인이 공금 횡령의 상습범이기도 합니다.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어야 할 인기 작가가 술에 만취하고, 아내를 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니 설사 친구라 할지라도 무엇을 할지 예상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병든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시간이 지나갔다. 나의 처지는 망각의 사막 속에 있는 한 알의 모래였다. 탄환을 다 쏴 버린 쌍권총의 카우보이였다. 세발 모두 표적을 명중시키지 못했다. 나는 3이라는 숫자가 싫었다.

 

 

 

아무 보람 없는 하루가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다. 왜 살아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개, 모밀잣밤나무의 열매를 찾지 못하고 있는 다람쥐, 언제나 기어를 잘못 조립하고 있는 직공, 이와 같은 비정상 적인 작자들만 찾아오게 마련이다.

 

 

 

“돈이란 것은 괴상한 걸세. 한곳에 많이 모이면 돈에 생명이 생기고, 때로는 양심까지 생기게 되네. 돈의 힘을 제어하기가 어려워지지. 인간은 옛날부터 돈에 좌우되기 쉬운 동물이었네. 인구의 증가, 전쟁에 필요한 다액의 군사비, 세금의 중압… 이러한 것들이 인간을 더욱 돈에 좌우되기 쉽게 만들고 있네. 보통 인간은 지치고 겁내고 있네. 지치고 겁내고 있는 인간에게 이상은 불필요하지. 우선 가족을 위해 식량을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되네. 우리는 사회적 도덕과 개인적 도덕이 현저히 붕괴된 것을 보아 왔네. 인간의 품질이 저하되었단 말이야. 대량생산 시대에는 품질은 바랄 수 없으며, 원래 기대도 하지 않네. 품질을 높이면 오래 가기 때문일세. 그래서 모양을 바꾸는 거야. 이제까지 있는 모양을 강압적으로 못 쓰게 만들려 하네. 상업 전술이 낳은 사기야. 올해 판 것은 1년 후면 유행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게 만들지 않으면 내년에는 상품을 팔 수 없게 된단 말일세.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주방과 가장 번쩍번쩍 빛나는 욕실을 가지고 있네. 그러나 미국의 일반 주부들은 깨끗한 주방에서 만족한 식사를 만들 수 없고, 번쩍번쩍 빛나는 욕실은 대부분의 경우 방취제, 설사약, 수면제, 그리고 화장품 산업이라 일컬어지는 신용에만 의존하고 있는 사업의 상품 진열장이 되어 있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포장상자를 만들고 있단 말일세, 마로 군. 그러나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은 거의 전부가 잡동사니란 말이야.”

 

 

 

내 기분은 별과 별 사이의 공간처럼 공허했다. 집에 돌아오자 강한 칵테일을 만들어 거실의 창문을 열고 로렐캐니언 볼보드에서 땅울림처럼 들려오는 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아득히 반짝이고 있는 시가지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경찰차인지 소방차인지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완전한 정적이라는 순간은 거의 없었다. 하루 24시간 동안 반드시 누군가 도망하려고 하며, 누군가 체포하려고 하는 것이다. 많은 범죄를 안고 있는 밤 속에서 누군가 죽고, 누군가 손발을 잃고, 누군가 사방에 흩날리는 유리에 부상을 입고, 누군가 자동차의 핸들이나 무거운 타이어에 짓눌리고 깔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얻어맞고, 돈을 강탈당하고, 목을 졸리고, 폭행당하고, 살해되는 것이다. 어떤 자는 굶주림에 허덕이고, 어떤 자는 병마에 신음하고, 어떤 자는 따분해하고, 어떤 자는 고독이나 비탄이나 공포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잃고, 어떤 자는 화내고, 어떤 자는 슬픔에 잠겨 울고 있다. 다른 도시에 비해 특히 사악이 넘친다고는 할 수 없다. 풍족하고 활기가 있고 긍지를 진고 있으나, 짓눌리고 공허에 가득 차 있는 도시였다. 모든 것은 어떤 곳에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점수를 얻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 나는 조금도 점수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칵테일을 다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인생의 비극은 아름다운 것이 젊어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해를 거듭함에 따라 추악해 지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는 되고 싶지 않아요. 안녕히 계세요. 하워드.

 

 

 

“결혼에 반대할 만한 이유가 있나요?”

“100명 중 2명에게는 멋진 일이지. 그리고 나머지 98명에게는 형식에 지나지 않을 거고. 20년 후가 되면 남자에게 남겨지는 것은 차고 안의 의자 정도뿐이오. 미국 여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제멋대로의 생각과 생활을 하고  있단 말이야…”

 

 

 

“자넨 나를 사로잡았던 걸세 테리.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미소, 손을 움직이거나 할 때의 자연스런 동작, 조용한 바에서 조용히 마신 몇잔인가의 술 등으로 나를 사로잡은 거야. 언제까지나 즐겁고 기쁜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네. 자네와의 교제는 이걸로 끝이지만, 여기서 잘 가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네. 정말 잘 가라라는 말은 벌써 해 버렸단 말이야. 잘 가라는 말은 슬프고 쓸쓸하고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을거야.”



 

 




2014/06/07 - [먼지쌓인필름] - THE LONG GOOD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