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Q&A

uragawa 2014. 1. 27. 09:00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죠. 실은 까마귀의 생태가 아직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고요. 뭐, 인간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죽음이 얼마 안 남은 사람은 독특한 냄새가 납니다.”

어떤 냄새입니까?

“잘 표현을 못 하겠군요. 그야말로 시취屍臭랄지. 신체 기관이 이미 생명 활동을 중단해 안쪽에서 조금씩 썩어가는 냄새라고 하면 될까요. 나이를 먹으면 그 냄새에 민감해지거든요. 친구들을 만나도 누구한테 그 냄새가 나는 게 아닐까 싶어 불안합니다. 그런 냄새는 맡고 싶지 않지만, 한편으론 혹시 조금이라도 그런 냄새가 난다면 놓칠 순 없다고 혈안이 되고 말이죠. 그러다 그 냄새가 나는 녀석을 발견하면 다가서서 킁킁냄새를 맡지 않을 수 없어요. 입 밖에 내서 말하진 않아도 다들 같은 느낌일 겁니다. 서로 감시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아무도 먼저 가지 말아 달란 마음하고 저녀석에 비하면 나는 아직 괜찮다는, 그런 승부를 겨루는 것 같은 감정이 뒤섞인 대단히 모순되고 복잡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나한테서도 그런 냄새가 나는 게 아닐까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겁니다.”



“아니, 그건 죽음의 냄새라기보다 공포의 냄새야. 그 십몇 분간 인간이 발하는 공포의 냄새를 맡은 거야. 강렬한 냄새였어.”

어떤 냄새인지요?

“땀과 짐승 냄새. 체면이고 뭐고, 자존심이고 존엄이고 뭐고 없어. 있는 건 생에 대한 욕구와 집착뿐. 비참함과 어리석음과 천박함. 그런 것에 대한 혐오감과 체념이 사람들 표정 뒤에 들러붙어 그 모순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어.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체면을 지키면서 일하고 감춰왔건만, 이런 데서 순식간에 이렇게 비참하고 딱한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는 노여움과 수치. 왜 하필이면 자기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느냐는 원망. 그런 곳에 있고 나면 어떤 걸 가장 많이 느끼는지 아나? 비참함, 수치스러움, 패배감이야. 그런 곳에 있었다는 패배감. 브랜드로 치장하고, 차랑 집을 사고, 점잔 뺀 얼굴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해왔건만, 그날 그곳에 있었던 탓에 무지막지한 공포를 맛보고 위험한 일을 당하고 차마 눈 뜨고 볼수  없을 만큼 꼴사나운 몹습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패배감. 시간이 조금만 어긋났다면, 다른 곳에 가 있었다면 이길 수 있었는데. 그날 그곳에 있었다는 불운을 선택했을 때 진 거라는 감정에 시달려야 해.”



슬럼프도 있어?

“그렇게 사치스러운 거 없어. 슬럼프가 있다는 건 술술 써질때도 있단 말이잖아. 그런 거 있으면 좋게? 맨날 슬럼프라고. 쥐어짜고 또 쥐어짜다가 전에 버린 것 중에 뭐 써먹을 게 없나 늘 뒤적거리는걸. 꽁초 줍는 거랑 비슷한 분위기.”



“글쎄. 요샌 어떤게 해피엔드인지 알 수 없잖아.”

옛날 연속극은 최종회에서 문제가 죄 한꺼번에 해결되고 해피엔드를 맞이하는 게 많았잖아? 그게 늘 이상했어. 그런데도 자꾸 보게되고, 그러다 결국 납득하게 되고.

“난 납득 안 되던 쪽. 왜 여기서 화해를 하는 건데 싶고, 지금까지 그렇게 뻗대다가 최종회라고 갑자기 말귀가 좋아지는 거 이상하지 않아? 싶었지.”

옛날부터 삐뚤어진 애였구나.



그거 사실 엄청난 일이지 않아? 말로 보편회되다니. 사이코패스란 게 원래 보통 사람이 알 말이 아닌데, 그게 누구나 아는 말이 된 셈이잖아. 성희롱이며 스토커도 그렇고. 전엔 그런 존재를 막연히 감지하기만 했는데, 말이 되는 순간 갑자기 인지되지. 거꾸로 획일적인 꼬리표가 되기도 하지만.

“말은 무서워.”



사건의 원인을 어디서 찾을 것 같아?

“원인이라. 원인이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정말 이대로 원인이 안 밝혀지고 끝난다면 진짜 희망이 없을 것 같지 않아? 오해로 패닉을 일으켰다는 설명을 사람들이 납득할 것 같아? 신흥 종교 집단, 생화학 무기, 무차별살인마. 모든 사람이 납득하는 스토리를 쓰기는 쉽지 않아. 뭣보다도 우리는 이미 사이코도, 메타 픽션도 소화했으니 말이지. 어지간해선 믿어주지 않을 거야. 현대인한테는 이유가 없다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는 거야.”



미워할 상대가 없는건 꽤 비참한 일이에요. 저도 그렇지만, 그 이유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미움이며 슬픔을 쏟을 데가 없으면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없어요. 자기 안에서 말로 표현하질 못해요. 결국 어떻게 되느냐 하면 다들 자책하는 거예요. 저도 그랬답니다. 왜 잃어버렸을까, 왜 그날 그곳에 가족을 데려갔을까, 왜 우리였을까, 하고요.



“차별하는 건 당신 아냐? 아까 여기 들어왔을 때 그 눈빛. 내가 몰랐을 거 같아? 나도 직장 다닐 땐 당신 같은 눈빛을 했으니까 한눈에 알아봤어. 난 바쁜 사람이다. 사회 최전선에서 의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여기 오는 사람은 한가한 인간들. 느긋하게 과자나 굽고 태평하게 천연염색이나 하는 주부는 참 속 편하고 한가하기도 하지.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었어. 당신들 대기업에 속한 인간들, 분 단위의 일을 하는 자기 시간은 남들이랑은 다르다고, 자기 시간은 타인의 시간보다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은 속으론 자원봉사를 경멸해. 이제부턴 자원봉사의 시대라고, 기업인도 자원봉사를 통해 지역과 연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폼잡는 것에 불과해. 남자는 노후에 있을 자리를 확보하고 싶은 것뿐. 사실은 자원봉사 따위 수상쩍고 끈적끈적한, 자기만족을 위한 소일거리라고 생각하지?”



타인의 비극이 원래 자신의 행운을 실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고 싶은 일을 아직 할 수 있다고. 난 아주 작은 우연에 의해 살아 있는 거라고 말이죠. 반대로 침울해하는 애도 있긴 해요. 어쩌다 운이 좋아 살아 있을 뿐 자기도 언제 무슨일로 죽을지 모른다고요.



실은 난 그게 보기 영 그렇더라고. 회사에서도 책상 주위에 가족사진이니 뭐니 생활감을 끌어들이는 사람은 좀 그래. 미국 사람 사무실도 아니고 말이지. 그건 독립된 방이나 부스가 있어야 폼이 나는 거라고. 회사에서 타인의 가정 같은 걸 보고 싶진 않아.



벌써 겨울인가. 또 겨울인가. 월드컵 때문에 떠들썩했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거 대체 뭐였을까. 참 근거 없는 열광이었지. 사실 축구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다들 좋아하는 척하고 말이야.



하루 종일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현실 세계가 엄청 멀게 느껴져. 남 일 정도가 아니라 딴 세상 일 같지. 가끔 일찍 퇴근해서 텔레비전을 보면 아아, 세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이런 게 유행하는구나 싶어서 얼마나 참신한지. 참신하다기보다 생경하다고 할지, 믿기지 않는다고 할지. 완전한 평행세계. 그러니까 가끔씩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하고 접점을 갖지 않으면 영원히 못 돌아오지 않을까 싶은 거야.

“아, 어쩐지 알 것 같습니다. 현실감이 없다고 할지, 텔레비전하고 자기 사에에 눈에 안 보이는 벽이 있는것 같죠.”

맞아. 도무지 같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같지 않지. 매일 좁다란 곳에 격리돼서 지내는 거야. 다른 데하고 얽히는 일 없이.



전보다 마음의 병에 대한 편견은 없어졌지만, 월급쟁이한테 병은 역시 터부이까 말이지.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 한 번 쉬고 나면 책상이 없이지고 그러잖아.



“그렇죠. 매일 이 주변을 지나다 보니까 생각난 겁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쉬는 날엔 늘 비디오를 빌려다 보죠. 그런 단순한 권선징악이 마음 편하고 좋잖습니까. 흑백이 분명하니까요.”



다들 텔레비전 드라마랑 영화를 보면서 이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둥, 이런 말을 누가 하냐는 둥 불평하잖아. 그렇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술집 같은 데 가보라고. 보통 사람이 훨씬 더 거짓말 같고,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말을 지껄이거든. 요즘 세상은 허구하고 현실이 완전히 반전돼 있어.

그러니 농담 같은 일이 사실이라도 전혀 놀라울 거 없어. 정부는 늘 뒤에서 수상쩍은 짓을 벌이고 있고, 세상엔 언제나 음모가 만연해. 어떤 의미에선 그게 사실이고, 또 거짓말이기도 해.



“네. 슬퍼한다는 건 에너지와 기술이 필요한 일인 데다 타이밍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슬퍼할 수 없어요.”

비난받을 소리라는 걸 알면서 말하지면 슬픔은 이벤트거든요. 절차를 밟아 제대로 이벤트를하지 않으면 그 여파가 두고두고 오래가죠. 그렇지만 실제로 제대로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다들 그래요.

“다들?”

다들 진짜 나는 다르다고. 난 이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멋진 사람을 기다리는 거죠. 진짜 나를 발견해 줄 사람. 진짜 멋진 나를 속에서 끌어내줄 사람. 진짜 나를 이해해줄 멋진 누군가를.



그래. 인간은 말이지. 나쁜 건 자기 탓이라고 하기 싫거든. 기분 나쁜 일, 불쾌한 일은 남 탓을 돌리고 싶어 해.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일이잖아? 하지만 안 죽이면 곤란한 경우라든지 죽이는 게 그 사람한테 유리한 경우가 아주 많단 말이지. 그때 신이 있으면 아주 편리하거든. 신이 명령했다, 신을 위해서, 신의 이름으로,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으니까.

사람을 죽일 때만 그런게 아냐, 아주 나쁜 일이 있었을 때 남 탓으로 못 돌리면 괴롭잖아? 절대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누구 다른 사람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주 편하지.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보다 남을 미워하는게 훨씬 편해. 그런 때를 위해 신이 있는 거야, 난 알았어. 사람은 타인을 죽이는 동물이야. 그렇기 때문에 남을 죽이기 쉽게하려고 신을 만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