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기 괴 환 상

uragawa 2013. 5. 24. 19:00

저는 스스로 생각하기엔 제정신인 거 같고, 또 남들도 그렇게 대해준 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진짜 제정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미치광이일지도 모릅니다. 그게 너무 심하다면 정신병자일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저라는 인간은 정말 이 세상이 너무 시시해서 살아 있는 것이 지루하고 지루해서 아주 미칠 것만 같습니다.
-붉은 방 中



돌아라, 돌아라, 시계바늘처럼 멈추지 말고. 네가 돌고 있는 동안은 가난도, 늙은 아내도, 코흘리개 어린애의 울음소리도, 월남미로 지은 도시락도, 우메보시 하나뿐인 반찬도 뭐도 모든 걸 잊는다. 이 세상은 즐거운 목마의 세계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저물고, 내일도 모레도 또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목마는 돌아간다 中



불현듯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어쩌면 영겁토록 이렇게 커다랗게 원을 그리면서 이 숲속을 헤매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졌다. 외계의 그 어떤 것보다 내 자신의 불확실한 보폭이 훨씬 더 두려워졌다.

-화성의 운하 中



새벽 거리는 고요해서 그렇게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지구의 깊은 바닥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기 사나이 中



낡은 감색 비백무늬 고무줄 바지에 같은 천으로 된 방공두건을 쓰고 있었어. 그 두건 속의 얼굴을 콩전등으로 비춰보고는 깜짝 놀랐다네.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지. 어떻게 아름다웠냐고 물어도 대답할 수가 없네. 그냥 내 마음속에 있던 아름다움이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어.

-방공호 中



나는 그토록 고요하게 도자기처럼 침묵하고 있는 바다는 본 적이 없다. 거친 바다를 상상하고 있던 나로서는 너무도 의외였다.

달리 기분전환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두려움은 더욱더 커지기만 하면서 온몸 가득 퍼져가는 법이다.

-누름꽃과 여행하는 남자 中



중학교 시절, 기차나 전차 같은 데서 두 사람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문득 경이를 느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열심히 떠들어대면, 듣는 쪽은 너무도 냉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창밖 경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다 이따금 생각난 듯이 수긍. 그러나 수긍하면서도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윽고 한쪽이 입을 다물면, 이번에는 냉담하게 듣던 사람이 갑자기 열렬한 어투로 말을 꺼냈다. 그러면 먼저 말하던 사람은 다시 외면하면서 어쩐지 냉담해져 버린다. 인간들의 대화에서는 이런 형태가 그리 드물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는 자신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상대의 눈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눈을 벗어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더 이상 말을 이을 기분이 안 들 정도로 소심한 사람이었다. 바꿔 말하면 그마치 사랑에 대해서 탐욕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너무도 탐욕적이었기 때문에 타인을 사랑하거나 사교생활을 지속하는 일이 불가능 했는지도 몰랐다.



사람은 무관심한 군중 속에서 가장 완전하게 자신을 잊을 수 있는 법이다.

-벌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