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진심으로 오싹했을 때 어떻게든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공포에 쥐어뜯겨 움푹 팬 부분을 평평하게 고르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은 헛되이 하루 또 하루 얇은 종이를 떼어내듯이 흘러간다. 뭔가를 희박하게 만들고 조금씩 빛바래게 만들어간다. 기대를 품었던 시간은 실망으로 변하고 이윽고 체념에 들어간다. 마사지사에게 몸을 맡기고 끄덕끄덕 졸고 있으려니 낮에 본 몽찰의 잔재가 조금씩 녹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반쯤 잠든 상태가 되면 히로아키는 항상 이즈미 교카의 소설이 떠오르곤 한다. 수술실에서 마취주사를 맞으면 자칫 마음속에 감춰진 비밀을 고백해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혹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도 떠오른다. 비밀을 감춰두기란 어려운 일이다.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