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야음을 틈타 도망치기는 쉽다. 하지만 그래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놈들은 계속해서 그를 찾아내 죽이려 들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쫓기고 위협당하며 살아가긴 싫다. 어떻게든 여기서 결판을 내야 한다. 무로이는 진땀을 흘리며 제 몸을 지키려는 듯 주먹을 쥐어 가슴 가까이 끌어당겼다.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피고인처럼 보였다. 조금 전까지의 의연한 태도는 어디가고, 그 곳에는 죽음의 공포에벌벌 떠는 초로의 남자만 있었다. 단정한 얼굴이 일그러지고 땀에 젖은 백발이 이마에 달라붙었다. 보고 있기 애처로울 정도였다. “쏘지 마십시오. 보면 알잖습니까. 무로이 부장은 이미 죽었어요. 빈껍데기를 쏴봤자 아무 의미 없습니다.”“아니요, 쏠 겁니다.”구라키가 스스로 다짐하듯 내뱉었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